김인배 씨의 설치작업.
김인배 씨의 설치작업.
지하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치 신전에 들어온 기분이다. 가운데 거대한 대좌 위에는 정체불명의 인물상이 놓여 있다. 그런데 그의 신체는 구상과 추상이 혼합된 기괴한 형상이다. 머리는 좌우로 예리하게 뻗은 역삼각형이고 손의 위치에는 다섯 손가락 대신 구체(球體)가 덩그러니 놓였다.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6일부터 4월13일까지 열리는 신예조각가 김인배 씨의 개인전은 전시 제목인 ‘점·선·면을 제거하라’에 나타나듯이 우리가 전통적으로 체득한 미술의 원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청담동에 있던 갤러리를 소격동으로 이전한 것을 기념해 여는 이번 전시에는 김씨의 신작 15점을 선보인다. 그는 그동안 평면과 입체, 시간과 공간, 언어와 비언어 등 인간이 인위적으로 구분 지어 놓은 인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번 전시 출품작의 특징은 조형예술의 세 요소인 점(點)·선(線)·면(面) 연계성에 대한 상식을 깨뜨리는 시도다. 작가는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만나 면을 이룬다는 미술의 오랜 관념을 해체해 나간다. 지하 1층의 ‘설치’ 중 대좌 위의 인물상이나 ‘정면은 없다’에서 보듯이 얼굴의 면들이 합쳐져 선이 되는 역발상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반면 2층의 어두운 전시실 작품들은 점·선·면이라는 이성의 세계에 가려진 고통의 세계를 상징한다. ‘무거운 빛은 가볍다’처럼 세 요소가 뒤엉킨 부조리의 세계다.

점·선·면을 제거하면 시각예술 자체가 존립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묻자 김씨는 “다소 과격하게 전시 제목을 붙인 것은 기존 조형언어와 그것을 둘러싼 시스템의 한계를 재검토하자는 것으로, 그런 생각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지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답은 조형예술의 해체 작업이 그만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얘기로 들린다. (02)541-5701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