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춤·영화 버무린 사랑의 저릿한 기억
공연은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상상에서 출발했다. 벨기에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과 안무가 미셸 안느 드 메이 부부는 어느 날 식탁 위에서 아이들에게 ‘손가락 춤’을 선보였다. 검지와 중지를 움직이며 연인의 모습을 표현한 춤에 아이들은 매료됐다.

부부는 신이 나서 아이들 방에 있던 모형 기차와 장난감 건물 등을 소품으로 하나씩 추가하며 ‘손가락 연극’을 만들어갔다. 연극은 아이들뿐 아니라 집에 온 손님들에게 큰 즐거움이 됐다. 감독의 친구인 작가 토마 긴지그는 연극에 영감을 받아 몇 개의 짧은 글을 써내려 갔다.

이들은 연극을 집이 아닌 진짜 무대로 옮기기로 했다. 문제는 무대에서 보여주기엔 움직임이 너무 작다는 것. 도마엘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연극을 영화와 결합하기로 했다. 무대 위에 영화 세트를 차리고 상단에는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했다. 무대 위 미니어처 세트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을 카메라가 촬영해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담아냈다. 미리 녹음된 내레이션과 음악이 더해지면서 손가락 연극은 한 편의 서정적인 영화로 탈바꿈했다.

내달 6~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되는 ‘키스 앤 크라이’는 연극과 무용, 영화, 문학 등을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한 공연이다. 관객들은 한 편의 영화가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함께 본다. 촬영과 동시에 상영되는 영화이자 그 제작 과정이 무대예술이 되는 공연이다. 2011년 벨기에에서 초연된 후 11개국에서 상연되며 ‘인간의 감성과 기술이 조화된 수작’ ‘새로운 예술 형식의 극치’라는 호평을 받았다.

공연은 한 여인이 평생에 걸쳐 사랑한 다섯 명의 연인에 대한 기억을 무용가 두 명의 손가락들이 기차역과 집안, 들판, 사막 등 다양한 무대 세트를 오가며 빚어내는 동작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제목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경기 후 자신의 점수를 기다리며 코치와 앉아 있는 공간을 일컫는다. 마음을 졸이며 앉아 있는 짧은 순간에 선수들은 웃으며 키스하고, 때로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런 희로애락의 상황이 무대에서도 펼쳐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공연에서 손가락은 피겨스케이팅 장면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도마엘 감독은 “한때 사랑했으나 이제는 존재마저 희미해진 사람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란 질문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며 “작은 것에서 출발해 거대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공연 내레이션은 영화배우 유지태가 맡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