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만 거쳐도 공공기관 임원 자격"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 근절 방안을 마련하면서 해당 분야를 담당한 국회 상임위원회를 거친 정치인도 전문성을 인정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또 관련 업무를 맡은 부처의 고위 공직자도 기관장이나 감사 등 임원 자격을 부여하기로 해 허울뿐인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3일 “임원 자격 요건을 너무 촘촘하게 정하면 인재풀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어 포괄적으로 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공공기관을 담당하는 상임위를 거친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경우 전문성이 있다고 판단해 임원 자격을 부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선임된 김학송 전 새누리당 의원을 들었다. 그는 “김 전 의원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간사를 맡아 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을 통해 도로공사의 경영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며 “정치인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지난 20일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선임된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도 지식경제위원회 활동 경력이 있어 임원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장의 경우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선대책위원회 인천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한 친박 인사여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도 표면상 18대 국회에서 2009년 7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지경위 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정부의 공공기관 임원 자격에 부합하게 된다. 하지만 김 사장은 지난해 10·30 화성갑 보궐선거 때 ‘친박’ 중진 서청원 의원에게 공천 자리를 양보하면서 ‘특정 자리’를 약속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정부는 이와 함께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관련 분야 업무를 맡은 고위 공직자도 해당 기관 임원에 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 관련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다면 관련 분야의 공기업 임원이 되는 건 허용해줘야 한다”며 “이들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그러나 공공기관 임원 요건을 이처럼 느슨하게 정할 경우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는 물론 금융 공기업 기관장의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인사) 독식’ 등을 막을 장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국회 특정 상임위에서 활동했던 인사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전문성을 갖췄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며 “낙하산 인사라고 하면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을 떠올리는 게 보통인데 이들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기재부는 임원자격을 해당 분야 경력자로 범위를 좁혀 놓으면 내부 출신 또는 관련 분야 인사들이 자리를 독식하면서 외부 감시를 받지 않아 비리 등이 고착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원 자격 요건을 경력과 전공으로 좁히는 방안에 대해선 공공기관장 선임을 결정하는 일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민간위원들도 반대 의사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