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왼쪽)가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열린 피겨 여자 싱글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뒤 금메달을 차지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를 담담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피겨여왕’ 김연아(왼쪽)가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열린 피겨 여자 싱글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뒤 금메달을 차지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를 담담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할 수 없는 결과다. 솔직히 분노를 느낀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토론 없이 지나가서는 안 된다.” “믿을 수 없다!”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 카타리나 비트(49·독일)와 미국 피겨스케이팅의 ‘전설’로 꼽히는 미셸 콴(34)의 분노와 탄식이다.

심각한 편파 판정 논란을 낳고 있는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최종 결과가 논란을 넘어서 ‘스캔들’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채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피겨 역사상 가장 의문스러운 판정”

소트니코바에 '가산점 퍼주기'…해외언론도 "심판 덕에 金 땄다"
올림픽 2연패를 노리던 ‘피겨여왕’ 김연아가 21일 새벽(한국시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마치고 키스앤드크라이존에서 144.19라는 점수를 받았을 때 전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쇼트프로그램 점수(74.92점)를 더해 합계 219.11점을 받은 김연아는 개최국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쇼트 74.64점, 프리 149.95점, 합계 224.59점)에게 금메달을 내줘야 했다.

러시아 선수에게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가 매겨졌고 김연아에게는 박한 점수가 돌아갔다는 평가가 전 세계에서 나왔다. 미국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은 “소트니코바가 심판 판정 덕에 러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여자 피겨 금메달리스트가 됐다”며 “이는 피겨스케이팅 사상 가장 의문스러운 판정”이라고 비판했다. AFP통신도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를 상대로 논란이 많은 금메달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인터넷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서는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심판 판정에 대한 조사와 재심사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인터넷 서명 운동이 진행 중이다. 국제빙상연맹을 상대로 한 이번 청원에 서명한 사람은 이날 오후 10시 현재 157만명을 넘어섰다.

◆후한 수행점수 받은 소트니코바

둘의 운명을 뒤바꾼 것은 기술점수다. 김연아가 69.69점을 받은 반면 소트니코바는 75.54점을 받았다. 물론 기본점수만 따지면 김연아가 최대 58.39점을 받을 수 있어 최대 61.43점을 받을 수 있는 소트니코바에게 뒤진다.

하지만 9명의 심판진은 정확한 점프를 뛴 김연아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수행점수(GOE)를 줬다. 소트니코바는 9명의 심판에게 최고점수인 3점을 총 33회 받은 반면 김연아는 3점을 13개밖에 받지 못했다. 대신 김연아는 1점이 무려 41개나 되는 등 박한 점수를 받았다.

정재은 대한빙상경기연맹 심판이사는 “점프의 공중 회전 때 자세의 변화나 비거리·높이, 끝난 뒤 다음 동작과의 연결, 음악과의 조화 등 8가지 기준 중 4개를 채우면 2점, 6개를 채우면 3점의 GOE를 준다”며 “소트니코바가 3점을 많이 받은 반면 김연아에게 1~2점의 GOE가 많았는데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익명 보장하는 채점 방식 개혁해야”

심판진 구성과 판정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테크니컬 부문을 포함해 15명의 심판진 가운데 러시아 심판이 3명, 우크라이나·에스토니아·슬로바키아 등 친러시아 성향 심판이 3명 포함됐다. USA투데이는 “미국과 한국, 다른 서양 심판이 쇼트프로그램 심판진에는 포함됐다가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제외됐다”며 “그 자리에 나가노올림픽 때 아이스댄스의 판정을 조작하려다 적발된 우크라이나 유리 발코프 심판과 러시아 피겨협회 회장 부인인 알라 셰코프체바가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편파 판정 논란에 피겨스케이팅의 인기가 떨어질 것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이날 경기에 참가한 애슐리 와그너(미국)는 “판정에 얽힌 논란이 피겨스케이팅의 인기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사람들은 넘어진 선수가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기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채점 방식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판정 담합 ‘스캔들’ 이후 피겨 판정 시스템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며 “심판진이 자국 협회의 압력을 받지 않도록 익명을 보장받았으나 이 때문에 담합과 자국 편향 여부를 가려내기 매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