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만나려고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았나 보다….”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난 20일 금강산호텔. 1차 상봉 최고령자인 김성윤 할머니(96)는 동생 석려씨(82)와 학자씨(71)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헤어진 후 60여년이 지난 현재 자신도 동생도 백발의 노인이 됐지만 눈매가 꼭 닮았다. 3년4개월 만에 이날 금강산에서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시작한 상봉 행사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별의 한을 풀었다. 이산가족들은 오후 7시 10분께 환영 만찬을 가졌으며 21일 개별 상봉을 한 후 22일 다시 헤어질 예정이다.

남측 상봉자 류영식 할아버지(가운데·92)가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북측 환영만찬회에서 조카들의 부축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측 상봉자 류영식 할아버지(가운데·92)가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북측 환영만찬회에서 조카들의 부축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1주일이면 만날 줄 알았는데…”

전쟁과 분단이 갈라놓은 남북 이산가족 318명(남측 상봉 신청자 82명, 동반 가족 58명 및 이들의 재북 가족 178명)은 아침 일찍 상봉장으로 향했다. 남측 상봉단은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CIQ)와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오전 11시께 북측 통행검사소를 지났다.

금강산호텔에 도착한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3시 첫 만남을 가졌다. 가족들이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상봉장은 이내 흐느낌 소리로 가득 찼다. 서로 손을 잡고 연신 얼굴을 어루만졌다.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김명복 씨(66)는 누나 명자씨(68)를 만나자마자 오열했다. 부모는 당시 전쟁통에 1남2녀 중 명자씨만 두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명복씨는 “1·4후퇴 때 내려와 1주일이면 누나를 만날 줄 알았는데 60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만나게 됐다”고 울먹였다.

남측 박양곤 씨(53·오른쪽)가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납북된 형 박양수 씨를 만나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측 박양곤 씨(53·오른쪽)가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납북된 형 박양수 씨를 만나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생전 처음 본 배 속의 아들

강능환 할아버지(92)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고서야 당시 결혼한 지 4개월도 채 안돼 헤어졌던 아내의 배 속에 아들 정국씨(63)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전 처음 아들을 보고 강 할아버지는 “늙었다”고 말하고 울기 시작했다. 굽은 등과 갸름한 얼굴, 한눈에 봐도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강 할아버지는 세월이 너무 지나 잊었던 아내의 이름이 ‘원순실’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손기호 할아버지(91)는 딸 인복씨(61)와 외손자 우창기 씨(41)를 만났다. 손 할아버지는 딸을 눈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손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부모와 아내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딸은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다음에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경비가 강화되면서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박운형 할아버지(93)도 북한에 두고온 딸 명옥씨(68)와 동생 복운(75·여)·운화씨(79)를 만났다. 헤어질 때 예닐곱 살 소녀였던 딸이 이제 할머니가 돼 아버지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영실 할머니(88)는 딸 동명숙 씨(67)와 동생 정실씨(85·여)를 만났으나 치매 때문에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명숙씨는 이 할머니가 자신과 이모를 알아보지 못하자 “엄마, 이모야, 이모, 엄마 동생”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영환 할아버지(90)는 아내 김명옥 씨(87)와 아들 대성씨(65)를 만났으나 연로한 탓인지 아내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북측 동생 이철호 씨(78)는 60여년 만에 본 형 명호씨(82)에게 메모를 건넸다. 형은 보청기를 꼈지만 듣는 데 불편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