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콘텐츠 있으면 누구나 저자 될 수 있어…출판사들도 예의주시
소설가 김서령 씨의 에세이집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예담) 도 마찬가지다. 김씨가 일상적인 이야기와 어릴 때 추억을 담아 페이스북에 올리던 글을 출판사에서 보고 ‘책이 되겠다’ 싶어 접촉했고 이 글이 묶여 작가의 첫 에세이집이 됐다.
이처럼 페이스북 콘텐츠가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일반인이 저자로 데뷔하는 기존의 과정은 주로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하고 출판사가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였다. 하지만 이젠 출판기획자들이 페이스북에서 일반인의 글을 탐색하는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유명인이나 저명한 지식인이 책을 쓰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누구나 콘텐츠가 있으면 페이스북에 이를 노출시키고 ‘저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미교포 이서희 씨가 자신의 관능과 욕망을 솔직하게 써내려 간 글을 모은 《관능적인 삶》(그책), 자신의 일상적인 밥상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거기에 시를 붙인 오인태 시인의 《시가 있는 밥상》(인사이트북스), 사진과 산문을 붙여 펴낸 박후기 시인의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문학세계사) 등도 페이스북 글에서 책 출간으로 이어진 경우다.
이는 피부에 와 닿으면서도 진솔한 글이 많이 올라오는 페이스북의 장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은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면서 저자의 전공인 고전을 접목해 글의 힘을 유지했고, 《관능적인 삶》은 욕망을 솔직하면서도 외설스럽지 않게 표현해 생명력을 살렸다.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또한 소설가의 글답게 일상생활을 맛깔나게 담았다.
《우리에겐…》을 출간한 예담의 최유연 편집자는 “페이스북 글은 불특정다수가 아니라 지인들이 읽는다는 전제를 갖고 쓰기 때문에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솔한 경우가 많다”며 “무명의 일반인은 자신의 글솜씨나 사유를 다수에게 보여주고, 편집자는 이를 통해 책을 기획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맹랑 언니…》를 편집한 박효진 행성비 편집자도 “페이스북 글들이 유료 단행본으로 나올 만한 수준을 유지한다면 이런 트렌드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이 책을 통해 젊은 여성들이 고전을 찾게 됐듯 새로운 독자층을 발굴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편집자 혼자 콘텐츠를 검토했던 기존의 투고 방식과는 달리 댓글 등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과 독자층을 미리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블로그가 크게 유행했던 2007년께 미국에선 블로그 연재물을 모은 책을 뜻하는 ‘블룩(blook·blog+book)’이란 신조어가 생겼고,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의 3분의 1을 차지하기도 했다”며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의 중심이 된 지금 이런 현상은 앞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고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인이 저자가 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