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줄푸세'로 돌아가야 할 시점
“뉴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 오늘은 공무원 봉급날입니다.” “뉴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 별 볼 일 없습니다.”

1970년대, 당시 TBC 아침 뉴스 진행자였던 봉두완 전 국회의원이 뉴스 시작과 함께 던졌던 해학의 말들이다. 아침 출근길 통근버스 안에서 느꼈던 상큼한 청량감이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한국이 1977년에 1인당 소득 1000달러를 넘어섰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생활 수준은 보잘 것 없었지만, 1970년대 후반은 우리가 경제 성장의 과실을 조금씩 피부로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런 한국이 지금은 선진국에 진입하고 세계 만방에 그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논바닥 얼음 위에서 엉성하기 그지없는 썰매를 타고 놀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부자 나라들만 참여하는 동계올림픽의 각종 경기에서 메달을 다투는 나라로 변했다. 고철 장사에 불과했던 철강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제철소를 보유하게 됐고, 한 손으로 들기에는 꽤 무거운 트랜지스터 라디오 정도를 생산했던 전자 산업은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브레이크 드럼도 잘 만들지 못해 많은 교통사고를 일으켰던 자동차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5위 자리를 차지했다. 건설·조선·화학 산업도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이룩한 경제 성장의 성과다.

요즈음의 한국은 어떠한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스리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양,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각종 법률에 눌려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도급법,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법 등의 이른바 경제민주화법은 잘나가는 주체를 주저앉혀 키를 맞추겠다는 하향평준 지향적이다. 소득 양극화와 산업 편중화가 진정 문제라면 저소득 계층의 소득을 높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을 끌어올리려는 방책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온통 잘나가는 주체를 끌어내리는 입법이 판을 치고 있다.

한 가지 희망은 지난 1월6일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에서 한 발짝 물러나 경제활성화로 돌아서고 규제를 줄이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 잡겠다는 정책 전환이 바람직하다. 복지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정책 전환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정책의 부수적인 결과로 2016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347)’를 달성해보자는 의지도 표현했다.

그러나 ‘347’을 달성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시행한다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고, 원하는 목표 달성에서 더 멀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경제의 결과는 주어진 제도 하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경제와 같이 인구 5000만명에 1인당 소득 2만4000달러의 대규모 경제는 정부가 다스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국회가 남발하는 입법이 아니라 진정한 법의 성격에 바탕을 둔 법치의 틀 안에서 시장경제를 충실하게 실천해야 그런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이른바 ‘줄푸세’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는 과정에서 형성된 질서를 존중하고 진정한 의미의 법치를 세운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경제 철학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줄푸세는 ‘747’에 막혀 후퇴했고 지난 1년간 한국 경제는 운용 철학 없이 헤맸다. 박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은 이를 다시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은 시장이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법치의 개념을 바로 세우는 줄푸세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이런 철학이 변함없이 한국 경제의 운용 근간에 깊이 스며든다면 비정상은 정상화되고 창조경제는 눈부신 꽃을 피울 것이다. 역사에 길이 빛나는 금자탑을 쌓아 올릴 것이다. 봉두완 앵커가 다시 돌아온다면 “뉴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의 대한민국, 별 볼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를 아침 뉴스의 첫마디로 던질 것이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