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기적을 믿어요] 8편.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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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실행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 괴테
2011년 가을, 케냐
우리는 거대한 747 항공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수송기의 거대한 화물칸에는 자그마치 45톤에 달하는 구호물자가 가득 차 있었다. 이 물건들을 전달하러 케냐 투르카나 지역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수도 없이 타봤지만, 이렇게 커다란 비행기에 달랑 열댓 명만 탄 일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한 뒤, 비행기에서 화물을 내리는 작업만도 한참이 걸렸다. ABC 뉴스팀은 승무원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나머지 일행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뉴스팀은 활주로에 있는 일행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다양한 인터뷰를 녹화했다. 화물을 내리고 세관을 거치고 우리 손에 상자가 들릴 무렵이 되자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우리는 각자 상자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잠시 앉아서 쉴 틈도 없이 램과 뉴스팀 그리고 케냐 지사 직원들과 함께 작은 프로펠러기에 몸을 실었다. 케냐의 서북부에 위치한 투르카나 지역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유니세프 직원들로부터 간단한 브리핑을 받고 불안한 상황임에도 찾아준 데 대해 환영 인사도 받았다. 그런데 이들에게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를 듣자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또다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사람이 ‘굶어서’ 죽다니 말이다.
잠시 고개를 돌리자, 프로펠러기 유리창 아래로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드넓게 펼쳐진 사막이 보였다. 저렇게 메마른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는 인간만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풀들까지 생명의 기운을 받지 못하고 있구나….
우리 일행은 프로펠러기에서 내린 후로도 한참을 이동했다.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있어서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는 짐짝처럼 이리 쏠리고 저리 밀리고 했다. 잔인하리만치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통에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온몸이 끈적일 정도로 차 안이 후텁지근했다.
앞으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구호물품을 전달해야 하는 중책이 남아 있는 탓에 불안한 것도 있었지만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데다 잠도 부족해서 점점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졸음과 씨름하는 사이 바깥 풍경이 완만한 언덕이 있는 사막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1시간 남짓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달렸다. 이윽고 자동차가 언덕 위로 올라갔는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뜨거운 모래사장을 비추는 태양의 반사광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 주위로 낮은 언덕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기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정말 숨이 멎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ABC 뉴스팀이 그 아름다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하여 잠시 차를 멈추었다.
나는 텅 빈 사막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바위와 모래, 작은 언덕과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산뿐이었다. 우리 일행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고 저만치 아이의 손을 잡고 언덕을 비스듬히 올라오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환영을 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처음에는 모래 위로 여자의 머리만 보이는가 싶더니 서서히 아이를 데리고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사람들이 살만한 곳을 지나온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는데.
나는 한 손을 이마 위에 대고 더 자세히 보려고 애썼다. 너무 멀리 있어서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메마른 가죽처럼 주름진 피부로 보아 평생을 뜨거운 사막에서 태양을 받으며 살아온 모양이었다. 멀리서도 굉장히 말라 보였다.
상체를 감싸고 걷는 천 사이로 팔꿈치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허리춤에 두른 천은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다리 위로 간신히 걸쳐져 있었다. 뺨도 수척하게 여위었고 눈가는 퀭했다.
바로 옆에 손을 잡고 걷는 아이도 굉장히 말라서 그대로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키와 몸집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도 꽤 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더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보이는 나이에 비해 몸이 확연하게 작고 여위어 있어서 너무나 놀랐다.
이들은 누굴까? 왜 사막을 헤매고 있는 거지? 이 여자가 아이의 엄마인가? 아니면 할머니인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안녕하세요.”
나는 그쪽에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서도 이렇게 말을 붙였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한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그녀도 많이 놀란 듯했다. 눈을 가늘게 뜨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당장 뒤돌아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가까이 가도 안전할지 가늠해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고 조용히 살피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바삐 움직이느라 그 여자가 나타났는지도 몰랐다. 그 작은 꼬마는 여자의 치맛단 뒤로 숨어서 고개를 반쯤 내밀고 나를 탐색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처음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지던 경계심이 사라지면서 내 안의 두려움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막 한가운데서 우연히 마주친 두 여자 사이에 어떤 공감대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나도 그녀도 서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구호활동을 위해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주 분명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는 아이를 잡은 손은 그대로 두고 다른 손으로 배를 문질렀다. 그리고 물을 달라는 몸짓을 했다. 그 여자는 굶주렸고 도움이 필요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내 존재에 얼마나 놀랐는지는 몰라도 당장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그런 두려움마저 사라진 듯했다.
다행히 내 배낭에는 사과 하나가 들어 있었고, 나는 급한 대로 그것을 꺼내 내밀었다. 그녀는 사과를 받아 들고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그래 봐야 1~2초 정도겠지만) 나를 빤히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마움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나는 예기치 못한 반응에 어쩔 줄 몰랐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과 하나가 그녀에게는 엄청나게 고마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이내 발걸음을 재촉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나는 당장에라도 쫓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언덕 반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도 나는 수없이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녀의 얼굴이 손에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다. 눈빛에 서린 굶주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깡마른 몸, 죽을힘을 다해서 아이를 붙잡고 있던 한쪽 손과 사과를 움켜쥔 나머지 손.
내 인생에서 그녀를 만났던 사실은 바로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기억들 때문이기도 하다. 시에라리온에서 죽어가던 갓난아기, 흐릿한 조명 아래 일을 하던 아이들의 모습,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셔츠를 빨아서 빳빳해지도록 베고 잔다던 소녀들….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사회적인 변화는 엄청난 수의 대중이 그 가능성을 느끼고 참여할 때만 가능하다. 모두가 이를 깨닫고 변화를 갈망해야 한다. 변화는 우리가 진심과 마음을 다하고 우리 손과 발이 직접 움직일 때에만 이룰 수 있다.
언젠가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더 깊이 관심을 갖고 우리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어린 시절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가는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 힘을 합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작가라면 변화를 위해 글을 쓰라. 당신이 조각가라면 조각을 하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전 세계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녀에게 가르치라. 후원금을 낼 여유가 있다면 후원을 하라.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1달러만 있으면 어린이 한 명이 40일 동안 깨끗하고 건강한 물을 마실 수 있다. 무려 40일 동안이나 말이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모든 일을 멈추지 말자. 그보다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 어른들부터 행동에 나서야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노동 현장에 내몰리고, 한 끼 식사 때문에 거리에서 몸을 팔고, 강압에 못 이겨 군대에 끌려가는 아이들이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행동을 멈추지 말자. 나는 그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제로의 기적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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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
2011년 가을, 케냐
우리는 거대한 747 항공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수송기의 거대한 화물칸에는 자그마치 45톤에 달하는 구호물자가 가득 차 있었다. 이 물건들을 전달하러 케냐 투르카나 지역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수도 없이 타봤지만, 이렇게 커다란 비행기에 달랑 열댓 명만 탄 일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한 뒤, 비행기에서 화물을 내리는 작업만도 한참이 걸렸다. ABC 뉴스팀은 승무원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나머지 일행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뉴스팀은 활주로에 있는 일행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다양한 인터뷰를 녹화했다. 화물을 내리고 세관을 거치고 우리 손에 상자가 들릴 무렵이 되자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우리는 각자 상자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잠시 앉아서 쉴 틈도 없이 램과 뉴스팀 그리고 케냐 지사 직원들과 함께 작은 프로펠러기에 몸을 실었다. 케냐의 서북부에 위치한 투르카나 지역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유니세프 직원들로부터 간단한 브리핑을 받고 불안한 상황임에도 찾아준 데 대해 환영 인사도 받았다. 그런데 이들에게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를 듣자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또다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사람이 ‘굶어서’ 죽다니 말이다.
잠시 고개를 돌리자, 프로펠러기 유리창 아래로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드넓게 펼쳐진 사막이 보였다. 저렇게 메마른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는 인간만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풀들까지 생명의 기운을 받지 못하고 있구나….
우리 일행은 프로펠러기에서 내린 후로도 한참을 이동했다.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있어서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는 짐짝처럼 이리 쏠리고 저리 밀리고 했다. 잔인하리만치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통에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온몸이 끈적일 정도로 차 안이 후텁지근했다.
앞으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구호물품을 전달해야 하는 중책이 남아 있는 탓에 불안한 것도 있었지만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데다 잠도 부족해서 점점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졸음과 씨름하는 사이 바깥 풍경이 완만한 언덕이 있는 사막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1시간 남짓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달렸다. 이윽고 자동차가 언덕 위로 올라갔는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뜨거운 모래사장을 비추는 태양의 반사광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 주위로 낮은 언덕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기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정말 숨이 멎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ABC 뉴스팀이 그 아름다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하여 잠시 차를 멈추었다.
나는 텅 빈 사막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바위와 모래, 작은 언덕과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산뿐이었다. 우리 일행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고 저만치 아이의 손을 잡고 언덕을 비스듬히 올라오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환영을 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처음에는 모래 위로 여자의 머리만 보이는가 싶더니 서서히 아이를 데리고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사람들이 살만한 곳을 지나온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는데.
나는 한 손을 이마 위에 대고 더 자세히 보려고 애썼다. 너무 멀리 있어서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메마른 가죽처럼 주름진 피부로 보아 평생을 뜨거운 사막에서 태양을 받으며 살아온 모양이었다. 멀리서도 굉장히 말라 보였다.
상체를 감싸고 걷는 천 사이로 팔꿈치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허리춤에 두른 천은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다리 위로 간신히 걸쳐져 있었다. 뺨도 수척하게 여위었고 눈가는 퀭했다.
바로 옆에 손을 잡고 걷는 아이도 굉장히 말라서 그대로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키와 몸집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도 꽤 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더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보이는 나이에 비해 몸이 확연하게 작고 여위어 있어서 너무나 놀랐다.
이들은 누굴까? 왜 사막을 헤매고 있는 거지? 이 여자가 아이의 엄마인가? 아니면 할머니인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안녕하세요.”
나는 그쪽에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서도 이렇게 말을 붙였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한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그녀도 많이 놀란 듯했다. 눈을 가늘게 뜨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당장 뒤돌아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가까이 가도 안전할지 가늠해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고 조용히 살피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바삐 움직이느라 그 여자가 나타났는지도 몰랐다. 그 작은 꼬마는 여자의 치맛단 뒤로 숨어서 고개를 반쯤 내밀고 나를 탐색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처음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지던 경계심이 사라지면서 내 안의 두려움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막 한가운데서 우연히 마주친 두 여자 사이에 어떤 공감대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나도 그녀도 서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구호활동을 위해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주 분명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는 아이를 잡은 손은 그대로 두고 다른 손으로 배를 문질렀다. 그리고 물을 달라는 몸짓을 했다. 그 여자는 굶주렸고 도움이 필요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내 존재에 얼마나 놀랐는지는 몰라도 당장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그런 두려움마저 사라진 듯했다.
다행히 내 배낭에는 사과 하나가 들어 있었고, 나는 급한 대로 그것을 꺼내 내밀었다. 그녀는 사과를 받아 들고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그래 봐야 1~2초 정도겠지만) 나를 빤히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마움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나는 예기치 못한 반응에 어쩔 줄 몰랐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과 하나가 그녀에게는 엄청나게 고마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이내 발걸음을 재촉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나는 당장에라도 쫓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언덕 반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도 나는 수없이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녀의 얼굴이 손에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다. 눈빛에 서린 굶주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깡마른 몸, 죽을힘을 다해서 아이를 붙잡고 있던 한쪽 손과 사과를 움켜쥔 나머지 손.
내 인생에서 그녀를 만났던 사실은 바로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기억들 때문이기도 하다. 시에라리온에서 죽어가던 갓난아기, 흐릿한 조명 아래 일을 하던 아이들의 모습,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셔츠를 빨아서 빳빳해지도록 베고 잔다던 소녀들….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사회적인 변화는 엄청난 수의 대중이 그 가능성을 느끼고 참여할 때만 가능하다. 모두가 이를 깨닫고 변화를 갈망해야 한다. 변화는 우리가 진심과 마음을 다하고 우리 손과 발이 직접 움직일 때에만 이룰 수 있다.
언젠가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더 깊이 관심을 갖고 우리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어린 시절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가는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 힘을 합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작가라면 변화를 위해 글을 쓰라. 당신이 조각가라면 조각을 하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전 세계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녀에게 가르치라. 후원금을 낼 여유가 있다면 후원을 하라.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1달러만 있으면 어린이 한 명이 40일 동안 깨끗하고 건강한 물을 마실 수 있다. 무려 40일 동안이나 말이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모든 일을 멈추지 말자. 그보다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 어른들부터 행동에 나서야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노동 현장에 내몰리고, 한 끼 식사 때문에 거리에서 몸을 팔고, 강압에 못 이겨 군대에 끌려가는 아이들이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행동을 멈추지 말자. 나는 그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제로의 기적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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