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 '끝장 보겠다'는 의지로 위기 정면돌파…LED특허싸움 땐 1년 넘게 머리도 안 잘라
사람들이 결의를 다질 때 하는 행동은 여러 가지다. 흔히 정치인들은 국립묘지를 찾고, 노조 집행부가 노동 현장에서 투쟁 강도를 높일 때는 단체로 삭발하기도 한다. 기업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을 때 어떤 행동을 할까.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61)은 한때 머리를 전혀 깎거나 다듬지 않은 채 난관을 정면돌파한 적이 있다. 2008년 12월22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LED(발광다이오드) 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때 일이다. 언제까지 그런 머리를 하고 다닐지 묻자 이 사장은 “기다리는 게 있는데 그것을 볼 때까지 머리카락 하나도 손대지 않겠다”고 답했다. 뭔가 끝장을 보기 위해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무려 1년2개월 동안 머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서울반도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집념의 승부사 기질

LED 전문기업 서울반도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승승장구했다. 2001년 427억원이던 매출은 2007년 2501억원으로 6배 가까이 불어났다. 빛을 비추는 ‘사이드 뷰’ LED를 국산화하면서 급성장했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매출이 2841억원으로 10% 정도 늘어났지만 영업손실 113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세계 1위 LED 기업인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이하 니치아)의 특허 공세가 발목을 잡았다. “서울반도체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2006년 말 특허 침해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연달아 제기했다. 이 때문에 막대한 소송 비용이 들어간 데다 영업에 차질을 빚었다.

니치아가 처음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주변에서는 “특허 사용료(라이선스 피)를 내고 적당히 합의하는 게 낫다”고 이 사장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 사장의 한 지인은 “처음엔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기술을 종속당한 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힘들다’며 ‘정면돌파’를 택했다”고 전했다. 이때가 2007년 10월이다.

마음을 굳힌 이 사장은 당장 담배를 끊고 아침부터 조깅을 시작했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가 있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머리카락에 손을 대지 않은 것도 이때부터다.

뚝심은 통했다. 2009년 2월 서울반도체는 니치아와 서로 특허를 인정하는 내용의 ‘상호 특허 공유’(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니치아는 한국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30여건의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반도체는 현재 니치아를 비롯해 독일 오스람, 네덜란드 필립스와 특허 공유 계약을 맺은 유일한 국내 기업이다.

‘기술 무장론’으로 회사 키워

서울반도체는 1987년 미국계 반도체 제조사 ‘페어차일드’ 출신 엔지니어들이 세운 회사다. 중소기업인 삼신전기 부사장이던 이 사장이 1992년 서울반도체를 인수하며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이때부터 이 사장은 ‘자체 기술(특허)’에 역점을 뒀다. “기술 개발 시작 단계부터 원천기술 확보를 염두에 두고 매달려야 한다”며 “넘기 힘든 특허 장벽을 구축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덕분에 지금은 LED 디자인, 물질, 제조 방법과 관련해 1만여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업계에서 ‘세계 1위 기업과 맞짱 뜰 수 있는 자신감은 철저한 기술 중심 경영이 원동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컨버터(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부품) 없이도 교류에서 구동 가능한 LED(아크리치)를 세계에서 처음 개발한 것도 서울반도체다. 직류 교류 겸용 LED ‘아크리치’를 비롯해 직하형 LED TV용 확산 기술, 웨이퍼 성장 기술에 남다른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이 사장 자신도 엔지니어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오클라호마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기술과 경영을 두루 섭렵한 그는 ‘공부벌레’로도 유명하다. 전 세계 현장을 누비며 배우는 것을 즐긴다. 기업설명회에서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어느 나라의 LED 산업에 관련한 질문이 나오든 대답에 막힘이 없다. 2012년 8월에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LED 콘퍼런스 ‘스트래티지스 인 라이트’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한국이 바라본 조명시장 전망’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서울반도체는 이런 경쟁력을 앞세워 지난해 처음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LED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기록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사장이 매 분기마다 기업설명회에 참석해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중소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싸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독일은 그런 강소기업이 1000개가 넘는 게 경쟁력입니다. 한국에서도 성공하는 글로벌 중견기업이 많이 나와야 국격(國格)이 올라가고 후배 기업인들한테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고용도 많이 창출하고 국가 경제에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창의, 개방 중시하는 기업문화

이 사장은 한 달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해외 로밍’을 알리는 안내음이 나오지 않을 때가 드물 정도다. 전 세계 5개 법인, 40개 대리점을 챙기느라 분주한 그지만 3000여명의 직원과 소통하는 데에도 열심이다.

지난해부터는 매 분기마다 ‘대표이사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신입사원, 경력사원, 팀장, 파트장 등 참석자를 달리해 임직원과 교감하고 소통한다. 일을 할 때는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만 일 외적으로는 다정다감하다. 몇 해 전, 임직원 수십명에게 자비로 주식을 사서 나눠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 1월 임직원 워크숍에서 이 사장은 ‘창!2!남!결!’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창의적으로 2배 빠르게 실행함으로써 남다른 결과를 만들어내자는 의미다. 그는 몽골 제국 건설에 기여한 기병부대와 칭기즈칸의 속도 경영을 소개하며 “LED 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자”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또 “더욱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가자”고 격려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