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정보 털릴라…꼭꼭 숨는 소비자
서울 목동에 사는 주부 김윤정 씨(45)는 며칠 전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사면서 회원으로 가입하면 5만원짜리 파우치(화장품 손가방)를 주고 값도 10% 깎아주겠다는 점원의 제의를 거절했다.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 휴대폰 번호를 적어야 하는 신청서 양식을 보고 나서다. 김씨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보면서 함부로 내 정보를 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KB국민·NH농협·롯데 등 카드 3사에서 1억건이 넘는 회원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터진 지 7일로 꼭 한 달이 지났다. 이 기간에 내 정보가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급속히 ‘은둔형 소비자’로 변하고 있다.

각종 포인트와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거리낌없이 신상정보를 공개하던 소비자들이 명함 제공마저 거부하는 등 몸을 사리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인터넷뱅킹과 온라인쇼핑을 줄이고 현금 결제를 택하는 ‘아날로그식’ 소비 행태로 돌아선 사람도 상당수다. 그런가하면 알지 못하는 전화번호로 발신된 메시지나 전화는 받지 않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이름, 직장 주소, 휴대폰 번호는 물론 결제계좌 등 민감한 내용이 대거 유출된 것을 확인하면서 ‘나 아니면 내 정보를 지킬 수 없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언제 ‘2차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고가 터진 후 지난 5일까지 3개 카드사에서 95만7000명이 아예 회원에서 탈퇴했다. 263만2000명은 갖고 있던 카드를 해지했으며 431만2000명은 카드를 재발급받았다. 790만1000명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드사에 불신감을 내보인 셈이다.

이군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은둔형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닌 만큼 체계적인 정보관리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정/박종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