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방위 로비 뚫고 이름 되찾아
"111년 한인 美 이민 역사에 새 장"
김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이민온 한인 1.5세대다. 여기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항에서 근무했다. 세금을 내고 투표권도 있는 미국 시민권자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2년 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모든 한국 사람과 많은 중국인들이 동해라고 부른다’고 하자 아들이 교과서를 펼쳐보이며 ‘일본해라고 표기돼 있다’고 우기더군요. 제 아들과 같은 미국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사실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질문에 충분히 답이 됐습니까.”
이날 한인 동포들이 쟁취한 동해 병기 법안은 일제강점기에 빼앗겼던 ‘동해’ 명칭을 미국 주류사회에서 되찾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 회장은 “미주 한인 이민 111년 역사상 한인의 현안을 담은 법안이 주의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한 건 처음이다. 한인 이민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애국가에도 나오는 동해라는 이름을 미국 학생들이 배우게 된다”며 “이 운동이 미 전역으로 퍼질 수 있도록 그동안 쌓아온 정보와 자료, 노하우를 다른 지역에 제공하겠다”고 했다.
버지니아주는 수도 워싱턴DC와 인접해 있는 데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판세가 비슷한 대표적인 ‘경합주(스윙스테이트)’다. 김 회장은 “민주, 공화 양당이 초당적인 의지를 갖고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다른 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특히 버지니아주는 텍사스 등 남부 6개주와 교과서 공동 이용 협약을 맺고 있어 파급효과가 작지 않다. 7개주가 동해 병기 교과서를 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번 운동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한인들의 ‘풀뿌리 운동’으로 출발했다. 동포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고 세력화하면서 정치권을 설득해 얻은 성과물이다. 버지나아주엔 15만명의 동포가 살고 있고 등록 유권자가 8만여명에 이른다.
주 하원 내 유일한 한인계인 마크 김 의원(민주)은 법안 표결 직전 7분여 동안의 의사진행 발언에서 일제시대 때 자신의 부모가 한글과 한국 이름을 쓰지 못했던 불행한 시절을 회고하면서 “지금 이 회의장에 모인 한인들이 의회에 도움을 구하고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티머시 휴고 의원(공화)은 법안을 발의해 도왔다.
우태창 워싱턴버지니아 한인노인연합회장(70)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찰흙처럼 뭉쳐 ‘힘’을 과시했다”며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회복했으며 한인의 정치력을 주류사회에 각인시켰다”고 말했다.
과거사와 영토분쟁 등을 둘러싼 한·일 외교전쟁의 승리라는 의미도 있다. 일본은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로펌을 고용하는 등 총력 로비에 나섰다. 한때 일본 측 로비로 법안 통과가 무산되거나, 통과되더라도 테리 매콜리프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우경화 바람이 결국 미 정치권에서 역풍을 맞아 한국 측에 유리하게 전개된 측면도 있다. 김 회장은 테리 매콜리프 주지사의 서명과 관련, “상·하원 모두 압도적 표차로 처리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리치먼드=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