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금투업계 살려면 '甲'부터 해외 나가야"
“금융투자업계가 살아남으려면 해외 진출밖에 답이 없어요. 그렇다고 ‘나가자’ ‘열심히 하자’로 요약되는 기존 방식을 고수해선 백전백패입니다. 우리의 강점을 철저히 활용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요.”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의 최근 관심사는 ‘금융영토 해외 확장’이다. 지난해 자본시장연구원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한국의 자본시장 관련 노하우를 아시아 지역 신흥국에 전수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 포괄적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해외 출장이 부쩍 잦아졌다.

김 원장은 먼저 그동안의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한국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은 천편일률적이었어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거점 도시에 사무실을 차리고 현지 인력을 흡수하는 패턴이었죠. 문제는 현지 사정에 정통한 ‘빠꿈이’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한국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없어 회사에 오래 붙어있지 않습니다. ‘용병’에 의존하던 영업이 망가지고 나면 임대료 내는 게 버거운 ‘식물 지점’으로 순식간에 바뀌지요. 어떻게 보면 날고 기는 선수들이 득실득실한 거점도시에서 영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예요”

그는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금융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앞세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신흥국부터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현지에서 인재를 채용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단 신흥국을 타깃으로 잡고 하드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천천히 해외영토를 넓히는 게 바람직하다”며 인도네시아를 집중 공략하고 있는 KDB대우증권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기관에서 주문을 따 와야 먹고 살 수 있는 증권사처럼 을(乙)의 위치에 있는 업체보다 자산운용사, 사모펀드(PEF), 헤지펀드와 같은 갑(甲)이 해외 진출에 유리하다고도 했다. 김 원장은 “한국 운용사가 현지에서 자리를 잡으면 뒤늦게 진출한 증권사가 자산운용사의 물량을 받아 연착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업종별 글로벌 ‘톱10’을 살펴보면 은행, 증권, 보험분야는 순위 변동이 없는 철옹성인 반면 PEF, 자산운용사 등은 블랙록과 같은 새로운 스타가 수시로 나온다”며 “적어도 해외에서는 증권 이외의 영역을 선봉으로 세우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미 경쟁자가 빼곡한 선진국 공략 방법을 묻자 “자산 규모가 420조원인 국민연금에 길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민연금은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에서도 ‘슈퍼 갑’이에요. 설명회를 요청하면 씨티, 골드만삭스 등 유수의 투자은행(IB)들이 서로 오겠다고 하죠. 현대차가 해외에서 성공해 부품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한 것처럼 국민연금과 국내 업체가 팀을 이뤄 선진 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국민연금이 일부 주문 물량을 국내 금융투자업체에 돌린다고 해도 미국 IB들이 뭐라고 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해외에 사무실을 여는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보다 해외 자산을 활용한 신상품을 대폭 늘리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더 효과적이라는 조언도 있었다. 현재 증권사가 내세우는 해외 관련 상품의 구색으로는 덩치 큰 해외 업체와 맞서기 힘든 만큼, 먼저 상품 글로벌화에 힘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외환을 다루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원장은 브라질 채권 폭락 사태를 예로 들며 “좋은 상품을 발굴해도 환에서 깨지면 말짱 도루묵”이라며 “외환 전문가들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송형석/사진=신경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