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곤혹 >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지난달 29일 한 트레이더가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Fed 발표 이후 주요 신흥국 통화가치는 하락했다. 뉴욕AP연합뉴스
< 곤혹 >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지난달 29일 한 트레이더가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Fed 발표 이후 주요 신흥국 통화가치는 하락했다. 뉴욕AP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의 지난달 29일 추가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 시장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주 초 인도 터키 등의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던 신흥국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신흥국의 금리 인상이 실패했다”고 평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경우에 따라 신흥국에 긴급 정책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가·통화 동반 급락

지난달 29일 오후 2시께(현지시간) Fed가 월간 채권 매입 규모를 100억달러 추가 축소키로 했다는 성명을 내놓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19% 급락했고, 개장 직후 상승세를 보이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증시도 즉각 하락세로 돌아섰다. 여파는 이튿날 아시아 증시로 이어졌다. 30일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45% 급락했고, 인도(-0.72%) 태국(-0.58%) 등도 하락세를 보였다. 29일까지 반등세를 나타내던 터키 리라화, 아르헨티나 페소화 등 일부 신흥국 통화는 30일을 기점으로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Fed의 양적완화 추가 축소 전인 28일과 비교해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최근 사흘(1월29~31일)간 약세를 보였다. 미국(-1.44%) 일본(-0.44%) 터키(-2.97%) 인도(-0.82%) 등의 주식시장이 동반 약세를 나타냈고, 신흥국은 브라질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 통화가치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美 테이퍼링+中 경기 둔화 ‘이중고’

Fed의 양적완화 규모 추가 축소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처럼 출렁인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 직후 발표한 성명서에 최근의 신흥국 위기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는 점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Fed는 사실상 세계 중앙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그들의 결정은 100% 미국 상황과 이익에 따라 이뤄진다는 부조리를 다시금 확인했다”며 “이번 Fed 결정은 신흥국에 대한 야멸찬 작별 인사”라고 평했다.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적인 통화정책 공조가 붕괴됐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실물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인다는 것도 금융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킨 요인이다.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5로 최근 6개월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결국 그동안 신흥국 시장 경제를 이끌던 ‘두 개의 엔진’이 모두 약화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신흥국 전체로 확산 여부 촉각

시장의 관심은 아르헨티나 터키 등 일부 신흥국에서 시작된 금융시장 불안이 Fed가 출구전략을 처음 언급한 작년 5월처럼 단기 불안에 그칠지, 아니면 신흥국 전반이 위기에 몰렸던 1997년 후반의 모습을 재연할 것일지에 모아진다.

WSJ는 “최근 펀더멘털이 양호한 헝가리와 폴란드 통화까지 약세를 보이는 현상은 금융 불안이 취약국에서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된 과거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헝가리와 폴란드의 통화가치는 최근 사흘간(지난달 28일 대비) 각각 4.11%, 2.67% 급락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1997~1998년과 같은 대규모 자금 이탈로 신흥국 전반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다만 “금융시장 참가자의 불안 심리가 증폭되면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은 나라도 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역시 신흥국 전체의 위기까진 아니더라도 일부 신흥국으로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은 열어놔야 한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우크라이나를 ‘서든스톱’(자본의 급격한 유출)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군으로 분류했다.

이 같은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 신흥국은 추가 정책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리라화 가치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플랜B’ 또는 ‘플랜C’를 발표하겠다”고 최근 밝혔고, 브라질 중앙은행 역시 기준금리 인상 등을 포함한 정책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레그메이슨의 펀드매니저 웨인 린은 “신흥국 중앙은행의 긴급조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경제 펀더멘털이 좋으면 금리 인상 충격을 견딜 수 있지만 많은 신흥국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고 분석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