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전후로 우리가 신흥국의 금융불안에 관심이 쏠려 있을 때 세
계 산업계와 투자자들이 더 주목하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미국 무디스가 소니를 투기등급으로 강등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애플의 주가 폭락 경고다.

소니는 오랫동안 일본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아베노믹스가 추구하는 전통 수출기업 부활 목표의 핵심이다. 1990년대 말까지 소니의 ‘워크맨’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었다. 인기면에서 애플의 ‘아이폰’이나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이번 투기등급 강등조치를 세계와 일본 산업계에선 ‘소니의 몰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르지만 작년 9월 핀란드의 상징이었던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로 넘어간 일도 그 배경에 대해 아직까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가 ‘노키아를 배우자’는 열풍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계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한때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글로벌 기업들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은 투자 관점에서는 ‘S자형 커브 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S자형 커브’는 사람의 성장곡선에서 유래했다. 모든 신기술과 제품은 시장점유율을 일일이 측정하지 않아도 서서히 틈새시장을 파고든다. 일단 소비자 속에 10% 정도 파급되면 급속히 퍼져나가다가 90%에 도달하면 정체 후 곧바로 쇠퇴한다.

이는 어
떤 신기술과 제품의 보급률이 10%에 달한 이후에는 구글의 조지 레이에스가 언급해 유명해진 ‘대수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매출이 100억원이던 기업이 다음해 150억원이 되면 매출 증가율은 50%다. 그 다음해 50% 성장하려면 매출 증가액이 75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이 법칙의 핵심이다.

‘S’자형 이론에 따른다면 어떤 기술과 제품이든 초기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단 보급률이 10%에 달하면 확신을 갖고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할 경우 높은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펀드매니저들도 이 이론을 근거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짜는 데 주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S자형 커브’의 한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점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누릴 수 있는 ‘블루오션’ 국면이 곧바로 ‘레드오션’으로 바뀐다. 특히 정보기술(IT) 업종일수록 그렇다. 이럴 때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라이프 사이클을 갈아타 ‘블루오션’ 국면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간단치 않다. 라이프 사이클을 갈아타려면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신기술이나 제품이 개발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요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소비자들은 곧바로 비용을 인식해 가격이 싼 후발업체 제품으로 대체하거나 앞으로 떠오를 ‘알파 라이징 업종’으로 이전된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점에서 ‘알파’가, 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 잣대에 따라 부각된다는 의미에서 라이징(rising)이 붙여진 용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경제질서와 중심국 등에서 실로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주력산업에서 변화가 가장 빨라 글로벌 선도기업일수록 ‘알파 라이징 업종’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 연구 개발 중이거나 개발이 완성돼 출시를 앞두고 있는 다양한 제품 가운데 ‘알파 라이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업종을 몇 개 든다면 △주인을 알아보는 카드 △건강을 북돋는 바이러스 △기름을 먹고 사는 박테리아 △자전거 교통 천국 ‘벨로벤트(Velovent)’ △어떤 연료든 다 쓸 수 있는 자동차 등이다.

소니의 몰락 이상으로 애플의 주가 폭락 경고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플은 최근 발표된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부합했더라도 라이프 사이클을 갈아탈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나 신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벌써 ‘제2의 노키아’로 애플을 지목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시각은 두 가지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소비자의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이나 신제품이 계속 뒷받침해 준다면 최근 사태가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의 문제다. 수출이나 부가가치 면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월가를 중심으로 후자를 우려하는 시각이 갈수록 늘고 있다. ‘소니의 몰락’과 ‘애플의 주가 폭락 경고’가 남의 일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책당국자와 투자자들은 이 점을 예의 주시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