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화폐가치 폭락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관람객들이 26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머니 뮤지엄에서 각국 화폐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화폐가치 폭락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관람객들이 26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머니 뮤지엄에서 각국 화폐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신흥국 통화 위기 가능성이 커지면서 24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 증시가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채권을 사들여 달러를 풀어온 양적완화 규모를 추가 축소(테이퍼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신흥국 불신이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경기회복 조짐과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온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증시마저 한 차례 조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주력 기업들의 작년 4분기 실적이 ‘원화강세 충격’을 받아 올 들어 이미 3.51% 떨어진 한국 증시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흥국 뒤덮은 ‘먹구름’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24일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지수는 318.24포인트(1.96%) 떨어진 15,879.11로 장을 마쳤다. 7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었다. 같은날 S&P500지수도 38.17포인트(2.09%) 폭락했다. 독일 DAX30지수는 2.48%(239.02포인트) 떨어진 9392.02, 프랑스 CAC40지수는 2.79%(119.49포인트) 하락한 4161.47로 마감하는 등 선진국 증시도 줄줄이 약세였다.

선진국 증시가 급락한 것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양적완화 규모를 더 줄일 것이란 예상에 이어 신흥국 통화 위기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1주일 동안 미국 달러 대비 16% 폭락했고, 채무 불이행(디폴트)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테이퍼링 때문에 신흥국에서 투자금이 빠져나가고 신흥국 통화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시장에서는 28~29일 열리는 FOMC 회의에서 월 채권매입 규모를 추가로 100억달러 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연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이 휘청거렸던 ‘버냉키 쇼크’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상승해온 미국 등 선진국 증시가 추가로 조정을 받아 낙폭이 더 커지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증시 역시 견디기 어려워진다”며 “아르헨티나 디폴트 우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신흥국 전체를 기피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증시는 좁은 박스권”

전문가들은 신흥국 위기와 양적완화 규모 추가 축소가 한국 증시에 악재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일각에서는 위기에 처한 일부 신흥국과 달리 경상수지 흑자국인 한국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부진,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의 실적 우려 탓에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 눈을 돌릴 만큼의 매력은 부족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 위기 후 한국 증시가 안전 자산으로 각광받으며 외국인이 44거래일 연속 한국 증시를 순매수했던 이유는 당시 중국 경기 부양 기대와 원화값 상승에 따른 환차익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중국 경기 기대가 낮고, 지난해 4분기 기업 실적도 부진하게 나오면서 당분간 외국인 매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837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 23~24일에는 하루에 1400억~1600억원의 매물을 쏟아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아르헨티나 같은 주변국가 위기가 세계적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당분간 신흥국 통화 불안으로 코스피지수가 한때 1900선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24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7.03포인트(0.36%) 떨어진 1940.56으로 마감했다.

이고운 기자/뉴욕=유창재 특파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