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화가가 누구인지 어떤 작품이 최고의 명작인지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감성과 직관의 영역을 다루는 분야라 공산품처럼 품질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부를 가리고 싶은 열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이뤄졌다.

그런데 그 기준을 보면 동양과 서양이 회화에서 저마다 추구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는 17세기 프랑스의 예술이론가인 로제 드 필(1635~1709)이다. 미술품 수집가 겸 감정가이기도 했던 그는 루이 14세의 특명을 띠고 스파이 노릇도 했던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유럽 역대 화가의 작품을 구성, 드로잉, 색채, 표현성 등 네 가지 영역별로 나눠 80점 만점으로 채점하고 종합 점수를 매겼다.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는 화가들이 데생을 중시하는 ‘푸생파’와 색채를 중시하는 ‘루벤스파’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색채주의자였던 드 필의 평가 결과가 어떤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색채주의의 거장인 루벤스는 당대 화성으로 추앙되던 라파엘로와 함께 65점으로 공동 1위로 평가했다. 색채주의자로 유명한 베네치아 화파의 티치아노도 51점, 렘브란트도 50점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데생주의자인 다빈치는 49점에 머물렀고 미켈란젤로는 37점이라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화가의 편견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드 필이 나름대로 객관적인 분석 기준에 입각해 평가를 시도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반면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신성의 구현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기준으로 작가의 수준을 논했다. 일찍이 남제(南齊, 479~502)의 화가인 사혁(謝赫)은 그림의 우열을 판별하는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지만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전신사조(傳神寫照)’였다.

외형보다는 내면의 정신성을 얼마나 잘 표현했느냐였다. 이후 수많은 중국 화론가들은 한결같이 명품의 조건으로 정신성을 최고로 쳤다. 그 완결편은 명나라 말기의 고관이자 문인화가였던 동기창(董其昌, 1555~1636)과 그의 친구 진계유, 막시룡 등에 의해 주창된 ‘남북종론(南北宗論)’이다.

이들은 모두 유교와 불교 양쪽 다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중국 산수화의 전개 과정을 당나라 때의 선불교(禪佛敎)에 빗대어 설명하려 했다. 이들은 선불교가 남종선(南宗禪)과 북종선(北宗禪)으로 나뉜 것처럼 중국 산수화 역시 당나라 때를 기점으로 해 화가의 신분, 산수화의 이념적 양식적 배경에 따라 남종화와 북종화로 분리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점진적인 수도에 의해 깨달음에 도달하는 북종선의 ‘점수(漸修)’와 기법의 단계적 연마를 중시하는 직업화가 사이에서 유사점을 발견해 직업화가의 그림을 북종화라고 불렀다. 반면에 단번에 깨달음을 얻는 남종선의 ‘돈오(頓悟)’를 영감과 본질을 추구하는 문인화가들의 지향과 같은 맥락으로 간주했다. 당연히 북종화보다는 남종화가 훨씬 높이 평가됐다.

나중에는 ‘남종화=문인’ ‘북종화=직업화가’라는 등식이 성립해 사회적 신분을 가르는 기준이 됐고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발전한다. 북종화는 기교에 치우치고 색채를 즐겨 구사한 데 비해 남종화는 수묵을 고집했고 아마추어적인 표현에 고매한 정신성을 담으려 했다. 원말 문인화가 예찬의 ‘용슬재도(容膝齋圖)’와 명나라 초기 직업화가인 대진의 ‘관산행려도(關山行旅圖)’는 그런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서양의 그림 평가는 일부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되긴 했지만 철저하게 형식적인 요소를 통해 객관성을 획득하려 한 데 비해 동양에서는 정신성이라는 추상적인 기준이 적용돼 지극히 주관적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림에 구현된 형식미를 중시한 서구의 미적 전통과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동양의 미의식이 낳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