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주 등 세계 명품 가구시장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 케네스 코본푸(46. Kenneth Cobonpue)(사진)는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전자제품, 자동차 등 한국 제품은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디자인 측면에서 '독특하다' '멋있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한국의 전통 문화와 소재를 활용한 디자인 개발을 강조했다.
필리핀 출신으로 국내보다는 유럽, 미국 등에서 더 유명한 디자이너 케네스 코본푸. ‘디자인도 산업’이라고 주장하는 그를 지난 17일 '필리핀 디자인가구 기획전(Exquisite beauty of the Philippines Furniture)'이 열리고 있는 서울 한남동 메종르베이지 갤러리에서 만나봤다.
▷ "디자인 독창성... 할리우드 스타들도 반해"
1968년생인 케네스 코본푸는 미국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 후 그는 독일, 이탈리아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6년 필리핀으로 돌아온 그는 이때부터 현재까지 어머니가 1972년 설립한 가구회사를 맡아 운영해 오고 있다. 그의 어머니인 베티 여사 역시 필리핀에서 유명한 등나무 가구 디자이너다. 케네스 코본푸는 현재 2개 공장 650명의 직원을 거느린 경영자이자 디자이너로 1인 2역을 소화하고 있다.
케네스 코본푸는 등나무, 대나무, 코코넛 등 필리핀 특유의 자연소재를 사용한 작품으로 디자인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마룬5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공예 등 필리핀 전통기법과 천연소재를 활용한 그의 가구를 즐겨 찾는 '케네스 코본푸 마니아'다. 그는 자신이 천연소재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주변상황을 활용한 당연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은 어느 지역보다 천연재료가 풍부합니다.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셈이죠"
▷ "디자인도 산업... 독립된 산업으로 가치 인정해야"
"가구는 물론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등 대부분의 제품들은 기능면에서 시간차는 있겠지만 결국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 단계가 되면 소비자의 구매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디자인이죠. 기능이 비슷한 제품들 가운데 어떤 디자인이 편리성을 더했느냐, 자신의 취향에 맞느냐가 결국은 구매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디자인을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그는 이제는 디자인을 독립된 산업분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 전 분야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제품이나 기술 개발에 비해 디자인 분야에도 개발과 연구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은 디자인 분야만큼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다고 봤다.
"필리핀이나 태국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한국에 비해 산업,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은 인정하지만 적어도 디자인 분야만큼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오래 전부터 정부와 민간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디자인을 독립된 산업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죠"
▷ "디자인 독립성 인정하면 협업(Collaboration) 늘어날 것"
그는 디자인을 독립된 산업으로 인식하고 그 전문성과 가치를 인정하면 타 산업, 특정분야 전문가와의 협업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가 디자인한 가구들은 모두 수공예 장인들이 제작을 합니다.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장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해 이를 실현시켜 주는 겁니다. 서로 상대방의 분야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케네스 코본푸는 가구 외에 자신의 디자인을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는 시도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라이프 스타일 박람회 '메종 앤 오브제'에서는 태양광발전으로 움직이는 유선형 대나무 콘셉트카 디자인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그는 수년째 미국, 독일 등 자동차 회사와 천연소재로 만든 전기자동차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필리핀 디자인 가구 재발견의 기회"
그는 이번에 비토 셀마(Vito Selma), 쥬드 티오투이코(Jude Tiotuico) 등 필리핀을 대표하는 동료 디자이너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비토 셀마 등 이번에 케네스 코본푸와 방한한 이들 역시 현재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은 내달 21일까지 예정된 '필리핀 디자인가구 기획전'에 등나무, 대나무, 강철을 소재로 한 디자인 가구와 홈 인테리이어 소품 40여종을 출품했다.
케네스 코본푸는 이번 기획전이 필리핀산(産) 가구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냈다.
"필리핀 가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인기도 높고 가치도 인정받고 있는 반면 아직 한국은 필리핀 가구에 대해 '값싸고 질은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필리핀 가구의 매력과 장점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는 이번 행사를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제품 가운데 한국 소비자의 취향과 정서를 고려한 10여종을 엄선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확신에 가까운 바램도 덧붙였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필리핀산(産)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이 기능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유럽이나 미국의 명품과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케네스 코본푸는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선배로서 진심어린 조언도 남겼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선우 기자 seonwoo_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