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 회장이 새해 들어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일 새해인사 모임에서 “앞으로의 경영환경은 위기 그 자체”라고 한 데 이어 올해 그룹 경영전략을 점검하는 자리에서도 ‘위기론’을 꺼냈다. 올해 경영 여건이 불확실하다는 전망 속에 주력 사업부문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위기론 꺼낸 구본무 회장

LG그룹은 지난 15~16일 이틀간 경기 이천시 LG인화원에서 구 회장 주재로 ‘글로벌 CEO 전략회의’를 열었다. 올해 그룹 차원의 경영전략을 공유하고 계열사별 사업계획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강유식 LG경영개발원 부회장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이희범 LG상사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등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이 참석했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사업하면서 절실하게 느꼈겠지만 우리가 처한 경영환경은 위기 상황”이라며 “가진 자원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신년사에서도 “임직원 모두가 지금이 위기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LG에선 구 회장이 ‘시장 선도’를 경영 화두로 강조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위기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 전 구 회장은 “1등 기업이 아니면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시장을 선도할 상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TV용 패널 등에서 경쟁사에 뒤지는 현실을 과감한 선제 투자로 바꿔야 한다는 점도 역설했다.

그러나 1년 사이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세계 경제 성장세가 어느 정도일지 불확실하고 기술혁신 방향도 예측하기 힘들어졌다는 게 LG 내부 판단이다. 지난해 CEO 전략회의에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을 초청해 ‘시장선도 전략’을 들었던 것과 달리 올해는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 ‘기술혁신과 변화’(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 ‘국제정세 변화’(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벌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올해 LG의 경영전략은

LG는 CEO 전략회의에서 올해 사업 기조를 ‘위기 대응 및 리스크 관리’로 정했다. 대규모 시설투자 등 양적 팽창보다 내실을 다지겠다는 의미다. 그룹 관계자는 “엔저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여파로 올해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데 CEO들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이런 기조 변화에 맞춰 올해 투자도 작년 계획 대비 20%가량 줄인 16조원 초·중반대로 정했다. 당초 LG는 지난해 20조원 투자를 계획했으나 LCD패널 수요가 줄면서 실투자는 16조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분야로는 원천기술 투자와 계열사 간 기술 시너지 효과를 내는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과 함께 TV 수요 감소에 맞춰 판매량을 늘리기보다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펼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경기 파주시에 짓고 있는 8세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2기 라인과 중국 광저우의 8세대 LCD패널 공장 등 기존 투자를 마무리 짓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