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증시 거래시간 늘려야 하나
한국거래소가 6시간(오전 9시~오후 3시)인 정규 주식시장 거래시간을 최대 1시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거래 급감과 개인투자자 이탈 등으로 꽁꽁 얼어붙은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한 ‘비장의 카드’라는 게 거래소 측의 설명이다. 거래시간 차이에 따른 해외 투자자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 주식시장의 정규 거래시간은 6시간30분~8시간30분으로 한국보다 길다.

[맞짱 토론] 증시 거래시간 늘려야 하나
거래시간 연장을 찬성하는 쪽은 투자자가 원하는 시간에 거래할 수 있는 선택권을 확대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투자자 편의성을 높여 증권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를 제고한다는 설명이다. 유럽(8시간30분) 미국(6시간30분) 등 선진국 증시가 한국보다 긴 거래시간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도 연장론에 힘을 싣는다. 앞서 거래시간을 늘린 홍콩과 싱가포르, 인도 증시가 거래시간 연장조치 한 달 뒤 거래량이 종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사례도 연장론의 주요 근거다.

반면 거래시간 연장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아주 단기에 그치는 ‘반짝 효과’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상품이나 투자자가 늘어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론 비용만 늘어날 뿐 거래량 증대 효과는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보다 거래시간이 짧은 일본(5시간)이나 홍콩(5시간30분) 증시가 작년에 한국보다 상승률이 크게 높았던 점도 거래시간이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할 뿐이라는 방증으로 제시한다. 증시 거래 위축은 전 세계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으로 유럽 재정위기 같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반영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시각이다.

이번 주 맞짱토론은 ‘증시 거래 활성화를 위해 거래시간을 연장해야 하느냐’를 놓고 찬성 측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과 반대 측 박종원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가 나서 논리 대결을 펼쳤다.

찬성 투자자 거래 편의성 높여…꽉막힌 유동성 '숨통' 터야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변호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정치적인 이슈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필자는 헌법의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관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자본시장의 모든 권력은 투자자로부터 나온다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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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여기에는 자본시장의 특성이 함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투자자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시장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시장의 투명성과 거래의 효율성을 개선시켜 투자자들이 편안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에 핵심적인 요소라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심한 거래 부진으로 최악의 업황을 경험하고 있는 금융투자업계에서 거래시간 연장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거래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리는 정규 주식시장 거래시간을 최대 한 시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0년 거래시간이 5시간에서 6시간으로 바뀐 지 14년 만에 거래시간 조정이라는 카드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동성 확대와 거래시간 차이에 따른 해외 투자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현재 오후 3시10분부터 3시30분까지 ‘당일 종가’로 거래하는 시간을 오후 4시까지 늘리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오후 6시까지 열리는 단일가 매매시장의 가격제한폭을 벌리고 주문 체결 시간도 30분 단위에서 5~10분 단위로 바꾸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 거래시간 6시간30분…유럽은 8시간30분간 열려

이 같은 움직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투자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거래시간 연장은 투자자가 원하는 시간에 거래할 수 있는 선택권을 더욱 길게 부여하는 것으로 투자자의 거래 편의성을 높여주는 요소다. 편의성 제고를 통해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시장 발전의 반석이 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거래시간 연장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물론 이런 서비스 제공에는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거래시간을 무한정 길게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투자자들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거래시간을 길게 서비스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해외 선진 자본시장이 우리나라에 비해 거래시간을 상대적으로 길게 가져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거래시간은 6시간30분이며, 유럽은 이보다 2시간 긴 8시간30분 동안 장이 열린다. 낮은 수준의 거래비용 아래에서 최대한의 거래시간을 보장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거래시간을 정했다는 게 각국 거래소의 설명이다. 투자자의 편의를 제고해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시장 발전의 기본이라는 믿음을 시장 거래기준을 통해 명확히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론 거래시간 연장만으로 거래량 감소라는 시장의 구조적 트렌드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재의 거래 부진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우리나라 경제구조와 인구 고령화 및 고용구조 악화에 따른 직접투자자 이탈에서 그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은 제도적 손질만으로 바뀌기 어렵다. 거래시간 연장이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 거래량을 큰 폭으로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앞서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거래시간 연장을 통한 투자자 편의성 제고가 거래량 증가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음을 일정 부분 인정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거래시간 연장 이후 거래량이 가시적으로 증가한 사실이 관찰된 적이 있으니 말이다. 2011년 3월 거래시간을 연장한 홍콩은 거래시간 연장 전 한 달간의 거래대금보다 연장 후 한 달간 거래대금이 45%나 늘었다. 싱가포르와 인도도 거래시간 연장조치 한 달 뒤 거래대금이 이전에 비해 각각 41%, 17% 증가하는 효과를 봤다.

한국은 2013년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5조8000억원이었다. 거래시간이 연장되면 시간당 9000억원의 거래대금이 증가한다고 산술적으로 가정하면 최대 연간 216조원의 거래대금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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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거래시간 연장직후 거래대금 전월比 45% 늘어


장기적으로 평가하면 거래시간 연장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장기 성과의 평가는 거래시간 연장 이외의 다양한 교란 요인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시장 환경의 변화라는 틀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으며 거래시간 변화의 순수한 결과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클 수 있다.

재적인 유동성 제고 효과는 시장 환경 개선의 부산물로 얻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이런 유동성 효과에만 집착한다면 정작 제도 개선의 핵심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시장을 성장시키는 근본적인 변화는 시장이 호황을 보일 때보다는 견디기 힘든 불황일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변혁의 필요성이 현재 체제에 안주하려는 타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2년 만에 주식 거래량이 36% 급감하고 주요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을 검토할 만큼 분위기가 안 좋은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현재의 거래 부진은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이런 때일수록 투자자의 편익을 제고할 수 있는 시장 거래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거래시간 연장을 비롯한 다양한 규제 개선으로 투자자의 편익을 높임과 동시에 시장의 유동성을 제고해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

반대 거래증가 '반짝 효과' 그칠것…건강한 시장 만드는 게 우선

한국거래소가 지난 9일 거래시간을 연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거래대금이 크게 줄면서 증권업계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지자 거래시간을 연장해 증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해 주식 거래대금은 2011년 대비 35%, 전년 대비 15% 줄었다. 파생상품 거래대금도 2011년에 비해 17%, 전년에 비해 12% 줄었다. 중개수수료 수입이 전체 수입의 약 40%를 차지하는 증권사 입장에서 거래대금이 갈수록 줄어드니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맞짱 토론] 증시 거래시간 늘려야 하나
각에서는 거래시간을 연장하면 연간 거래대금이 수백조원 증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그러나 단순히 거래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떠나간 투자자가 돌아오고 시장이 활성화될까?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거래시간을 연장한 해외 사례는 이런 기대에 큰 의문을 제기한다. 거래시간 연장 전후 1년간의 주식 거래대금을 비교하면 일본은 19% 감소했고 싱가포르와 홍콩도 18%, 6%씩 줄었다. 즉 새로운 상품이나 투자자를 수반하지 않은 단순한 거래시간 연장은 반짝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침체된 기업공개 되살려 자본시장 생태계 튼튼히

최근의 거래 부진은 유럽 재정위기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반영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세계거래소연맹(WFE) 자료에 따르면 뉴욕거래소의 지난해 주식 거래량은 전년 대비 15%, 런던거래소와 유럽 유로넥스트의 거래량도 5% 이상 감소했다. 거래 감소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공통 현상이라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시장을 주도하고 상장주식펀드와 사모펀드 등 장기 투자 수단이 증가하는 등 자본시장의 성숙도가 높아진 것도 거래 감소를 가져온 한 원인이다. 더구나 파생상품의 경우 거래시간보다는 강화된 규제가 거래 감소를 가져온 주요 원인이다.

현재도 한국거래소의 거래시간(6시간)은 일본(5시간)이나 홍콩(5시간30분)에 비해서는 길다. 세계적인 거래 부진 속에서도 일본(도쿄와 오사카)의 경우 지난해 주식 거래대금은 전년 대비 약 75% 증가했으며, 홍콩거래소도 약 20% 늘었다. 거래시간이 짧아서 투자자가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길은 단순한 거래시간 연장이 아니라 투자자가 돈을 벌 수 있는 그래서 다시 찾고 싶은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째, 기업공개(IPO)-성장-과실 배분-기업공개로 이어지는 건강한 자본시장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거래소는 유망한 기업을 발굴해 시장에 지속적으로 공급함으로써 투자자가 기업 성장의 과실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좋은 투자 기회를 제공하면 투자자는 스스로 찾아온다. 그러나 2012년과 2013년에 우리 시장의 기업공개 건수는 각각 25건과 40건으로 2011년의 67건에 비해 크게 줄었으며, 같은 기간 홍콩거래소의 기업공개 건수 62건과 102건에 비해서도 매우 저조하다. 홍콩거래소의 거래대금은 작년에 20% 증가했으나 우리 시장의 거래대금은 15% 감소했다. 기업공개 시장은 실물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그 성과를 투자자에게 효율적으로 환원하는 핵심 통로다. 이 통로가 제 기능을 못하면 기업도 투자자도 주식시장에 머물 이유가 없다.

둘째,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으나 본연의 목적을 잃고 투기판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동양그룹 부실 사태나 도이치증권의 주가조작 파동,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정치 테마주 작전 등 불공정한 거래도 여전하다.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믿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는 투기적인 투자 행태를 조장하고 건전한 투자자를 시장에서 내모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주식투자 인구는 2012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거래소는 매매의 장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상품(증권)에 대한 품질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데 누가 자신의 미래를 자본시장에 투자하겠는가.

[맞짱 토론] 증시 거래시간 늘려야 하나
'투기판 시장' 바로잡아야 발길 돌린 투자자 돌아와

째,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주식시장은 기업 가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시적인 요소들에 의한 가격 변동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투자 위험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을 더욱 어렵게 하고 결국 건전한 투자자가 설자리를 잃도록 한다. 거래소는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주가 변동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운영한다. 일시적 요소에 의한 과도한 가격 변동을 줄이고 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때다.

업계 일각에서는 거래시간 연장이 수수료 수입 증대를 가져와 고사 직전의 증권업계를 회생시킬 호재라고 주장하나 이는 실효성이 의심스러우며 또 수익 원천을 다양화하기 위한 업계의 구조조정 노력과도 배치된다. 거래소는 당장의 어려움만을 벗어나려는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처방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 증권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발굴하고,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과도한 가격 변동을 안정화하고, 다양한 수익 원천과 상품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한국거래소가 향후 글로벌 거래소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읽을 만한 자료

△글로벌 거래소 변화 양상과 시사점(이인형·강소현·김준석, 2012년)
△증권거래제도와 투자원리(정정현, 2005년)
△현대투자론(박정식·박종원, 2010년)
△각국의 증권거래제도 및 거래시스템 비교분석(한상범, 2001년)

김동욱/송형석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