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약점을 유리하게이용한 다윗, 강점만 믿다 불리해진 골리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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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 말콤 글래드웰 지음 /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352쪽 / 1만7000원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이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전술은 ‘압박’이었다.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쉴 새 없이 상대 선수를 압박했고, 당황한 상대 선수들은 공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한국은 기술이 훨씬 뛰어났던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강호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약팀들이 항상 그런 압박을 펼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공을 돌리면서 강팀이 그들의 플레이를 펼치도록 놔두는 경우가 더 많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는 인도계 미국인 비벡 라나디베라면 그런 느슨한 플레이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대회를 앞두고 딸이 속한 농구팀 코치를 맡은 그가 보기에 농구경기의 방식은 의아했다. 한 팀이 골을 넣으면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서 상대를 기다린다. 상대팀은 진영을 넘어오는 동안 공격 전술을 구상하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라나디베에게 이 같은 방식은 강팀과 약팀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는 ‘농구는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경기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대 진영에서부터 압박하는 ‘풀코트프레싱’을 경기 내내 구사하도록 지시했다. 농구특기생으로 구성된 상대팀은 당황해 실책을 연발했고, 라나디베의 팀은 이들을 격파하고 3회전까지 올라갔다.
《블링크》《티핑 포인트》《아웃라이어》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다윗과 골리앗》은 이처럼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을 소개한 책이다. 그는 “강자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약자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저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 대결을 설명하며 다윗이 이긴 건 ‘기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가 2m를 넘고 청동 갑옷과 창칼로 무장한 중보병인 골리앗의 승리를 점친다. 그러나 약해 보이는 다윗은 정교한 투석(投石)병이었다.
골리앗은 다윗을 무시하며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점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윗은 ‘내게로 오라’는 골리앗의 방식(근접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방식대로 원거리에서 돌을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 가서 목을 베었다.
저자는 여러 사례와 실험을 소개하며 강력하고 힘세 보이는 것들이 언제나 겉보기와 같지는 않다고 강조한다. 학급당 학생 수가 적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돈 많은 비벌리힐스의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도 아니다. 실험에 따르면 수가 적다고 교사가 학생 개인에게 정성을 더 쏟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부유한 부모는 자녀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세상 이치가 그렇기 때문에 약자라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단점도 생각만큼 치명적이지는 않다. 개리 콘은 초등학교 때 자신을 학대하는 선생을 때린 뒤 퇴학당했다. 그는 ‘문제아’라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 위해 일종의 ‘유쾌한 광대 연기’를 했다. 증권 쪽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성인이 된 뒤 무작정 월스트리트로 향했고, 옵션거래를 하는 임원의 택시에 동승해 일자리를 얻어냈다. 그는 옵션이 뭔지도 몰랐지만 ‘실패’에 익숙했기 때문에 잃을 게 없었고, ‘연기’에 익숙했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이용한 사례다. 바람직한 출발은 아니었지만 콘은 그 임원에게 큰돈을 벌어다 줬고 월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콘은 현재 골드만삭스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이자 사장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답게 쉽고 재미있다. 흥미로운 사례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논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또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많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의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경영서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날 수 있다는 ‘고전적’인 메시지를 매우 세련되고 설득력있게 풀어냈다.
그런데 ‘약자’들은 왜 라나디베의 농구팀 같은 방법을 쓰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렇게 힘든 전략을 쓸 만큼 필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라나디베의 팀 선수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알고 있었고 전면 압박 전술을 쓰지 않으면 무조건 진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는 인도계 미국인 비벡 라나디베라면 그런 느슨한 플레이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대회를 앞두고 딸이 속한 농구팀 코치를 맡은 그가 보기에 농구경기의 방식은 의아했다. 한 팀이 골을 넣으면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서 상대를 기다린다. 상대팀은 진영을 넘어오는 동안 공격 전술을 구상하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라나디베에게 이 같은 방식은 강팀과 약팀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는 ‘농구는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경기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대 진영에서부터 압박하는 ‘풀코트프레싱’을 경기 내내 구사하도록 지시했다. 농구특기생으로 구성된 상대팀은 당황해 실책을 연발했고, 라나디베의 팀은 이들을 격파하고 3회전까지 올라갔다.
《블링크》《티핑 포인트》《아웃라이어》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다윗과 골리앗》은 이처럼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을 소개한 책이다. 그는 “강자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약자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저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 대결을 설명하며 다윗이 이긴 건 ‘기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가 2m를 넘고 청동 갑옷과 창칼로 무장한 중보병인 골리앗의 승리를 점친다. 그러나 약해 보이는 다윗은 정교한 투석(投石)병이었다.
골리앗은 다윗을 무시하며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점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윗은 ‘내게로 오라’는 골리앗의 방식(근접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방식대로 원거리에서 돌을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 가서 목을 베었다.
저자는 여러 사례와 실험을 소개하며 강력하고 힘세 보이는 것들이 언제나 겉보기와 같지는 않다고 강조한다. 학급당 학생 수가 적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돈 많은 비벌리힐스의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도 아니다. 실험에 따르면 수가 적다고 교사가 학생 개인에게 정성을 더 쏟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부유한 부모는 자녀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세상 이치가 그렇기 때문에 약자라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단점도 생각만큼 치명적이지는 않다. 개리 콘은 초등학교 때 자신을 학대하는 선생을 때린 뒤 퇴학당했다. 그는 ‘문제아’라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 위해 일종의 ‘유쾌한 광대 연기’를 했다. 증권 쪽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성인이 된 뒤 무작정 월스트리트로 향했고, 옵션거래를 하는 임원의 택시에 동승해 일자리를 얻어냈다. 그는 옵션이 뭔지도 몰랐지만 ‘실패’에 익숙했기 때문에 잃을 게 없었고, ‘연기’에 익숙했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이용한 사례다. 바람직한 출발은 아니었지만 콘은 그 임원에게 큰돈을 벌어다 줬고 월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콘은 현재 골드만삭스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이자 사장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답게 쉽고 재미있다. 흥미로운 사례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논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또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많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의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경영서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날 수 있다는 ‘고전적’인 메시지를 매우 세련되고 설득력있게 풀어냈다.
그런데 ‘약자’들은 왜 라나디베의 농구팀 같은 방법을 쓰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렇게 힘든 전략을 쓸 만큼 필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라나디베의 팀 선수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알고 있었고 전면 압박 전술을 쓰지 않으면 무조건 진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