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사무실 인원 '질량 보존의 법칙'? 신입 한 명 겨우 쟁취하니, 나에게 '명퇴 화살'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하나대투증권 본사 13층 홍보실에서는 오랜만에 ‘까르르’ ‘하하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령장 수여식을 마치고 정식사원이 된 공채 새내기 15명이 회사 전통에 따라 본사 각 부서를 돌며 선배 사원들 앞에서 “회사의 기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2013년 들어 증권가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에 웃을 일이 많지 않던 선배 사원들은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는 새내기들을 보고 모처럼 기운을 낼 수 있었다. 이 회사 홍보팀 이능택 대리는 “갓 입사했을 때의 각오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새내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도록 올 한 해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내기들은 어느 회사에서나 관심의 대상이다. 존재만으로도 회사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청량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식 밖의 사고를 쳐 ‘고문관(행동이 굼뜨거나 어리숙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로열패밀리’를 동기로 둔 죄…‘지옥’ 경험


입사 동기 가운데 오너나 최고위 임원의 자제를 뜻하는 ‘로열패밀리’가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 막연하고 왠지 모를 기대감에 들뜨게 마련이다. ‘연수 때 돈독한 관계를 맺거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 두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라도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TV드라마와 달리 기대와 현실은 다른 법. 대기업 전자 계열사에 들어간 이모 사원은 사장의 아들이 동기로 입사하는 바람에 신입사원 시절 ‘죽음의 연수’를 맛봐야 했다.

교육시간엔 나이 차이가 적고 말이 통하는 젊은 대리급이 아닌 신입사원에겐 ‘하늘’ 같은 존재인 부장들이 직접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들고 나타났다. 부장이 뜨자 밑에 있는 팀장, 과장까지 총출동해 강의실 분위기는 군대와 비슷해졌다. 과거 한때의 예비군 훈련처럼 놀러 가는 것으로 알려졌던 지방 공장 연수도 고역이었다. 그냥 둘러보는 수준이 아니라 생산라인에 직접 서서 근로자들의 업무를 지켜본 뒤 보고서까지 작성해야 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힘든 연수 일정은 사장 아들 탓이었다. 사장이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라”고 특별 지시했기 때문이다. “동기들 사이에 ‘우리 기수는 임원급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 돌아요. 덕분에 신입사원 연수 때의 낭만 따위는 경험할 틈이 없었죠.”

○선배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면 낭패

지난해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에 입사한 김모 사원은 팀 배치 이후 ‘속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대학생 때부터 일하고 싶었던 부서에 배치받았는데 선배들이 말하는 ‘최악의 팀’에 들어가서다. 악몽의 시작은 사업부별로 진행된 신입사원 대상 연수였다. 평소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B팀의 팀장이라는 선배가 연수 교육에 들어와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패기 있는 신입사원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일을 할 수 있다”며 열변을 토했다.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도 B팀 팀장은 선한 인상의 얼굴로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친절하게’ 김 사원의 질문에 답했다. 이때 관심을 보인 김 사원은 결국 B팀에 책상이 마련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팀장의 ‘과도한 친절’은 인기 없는 팀에 신입사원을 들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김 사원은 “B팀은 사업부 안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한직인 데다 팀장도 선배들 사이에 악마로 통하는 사람이더군요. 후배님들, 신입사원 연수 때 선배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고 따져볼 만큼 따져본 뒤 희망 부서를 적어내야 합니다.”

○회식 때 ‘눈치’는 필수

신입사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는 ‘환영 회식’이다. 지난해 중소 금융회사에 입사한 강모씨는 신입사원 환영 회식에 가기에 앞서 ‘회삿돈도 내 돈처럼 아끼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술이 몇 잔 돌았을 무렵 안주로 시킨 알탕을 거의 다 먹게 되자 강씨는 식당 종업원에게 “육수를 좀 더 넣어 다시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이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한 번 더 종업원을 불러 ‘다시 끓여달라’고 하자 ‘멘토’를 맡고 있는 과장 선배가 버럭 화를 냈다. “너 아직도 돈 없는 대학생처럼 굴 거냐. 회사 배지 달고 술집에 와서 자꾸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안주를 더 시켜도 괜찮으니까 비굴한 모습 좀 보이지 마라.”

○실수 한 번에 ‘에이스’에서 ‘문제사원’으로


연수를 마치고 부서에 배치받으면 본격적인 ‘정글’을 경험할 수 있다. 대기업 계열 제조회사의 해외영업팀에서 일하게 된 최모 대리는 5년 전 신입사원 때 실수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부장과 함께 떠나는 첫 해외출장을 앞두고 바이어에게 보여줄 ‘신제품 견본’을 보안 절차를 거쳐 가방에 넣고 밤 11시께 퇴근했는데, 집에 와보니 없어진 것. 이 신제품은 언론 등 외부에 공개되면 안 되는 회사 ‘비밀 무기’였다. 회사가 발칵 뒤집혔고 집에서 쉬던 부서 선배들까지 총출동해 회사 인근 경찰서와 길거리를 샅샅이 뒤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끝내 신제품 견본은 찾지 못했고 최 대리 부서는 신제품이 출시될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사와 블로그를 검색해야 했다.

○고대했던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업황이 악화돼 신입사원 채용을 크게 줄인 증권회사에선 ‘새내기 품귀 현상’이 극심하다. 매년 ‘신입사원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입사 ‘9년차 막내’인 A증권사 경영지원사업부 소속 김 과장은 지난해 “꼭 신입사원을 받아 막내생활을 탈피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문턱이 닳도록 인사팀을 찾아 온갖 ‘로비’를 벌였다. 이런 노력이 통해서인지 작년 말 그의 부서에 꿈에 그리던 신입사원이 배정됐다.

하지만 김 과장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에게 ‘희망퇴직 신청서’가 날아들었기 때문. 증권업계가 ‘사상 최악의 시기’로 불리는 불황에 빠져들면서 대리·과장급도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이다. 김 과장은 “2014년은 뜻 깊은 해가 될 줄 알았는데 회사가 신입사원과 함께 희망퇴직 신청서를 안겨주더군요. 정말 눈물겹게 신입사원을 받았습니다.”

황정수/박한신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