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세무공무원의 유족이 “업무상 재해 보상금을 지급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심리적 부검’을 한 끝에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심리적 부검이 국내 재판 절차에서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고법 행정9부(부장판사 박형남)는 부산지방국세청에서 일하던 중 자살한 김모씨의 유족이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앞서 1심 재판을 한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했으나 이를 뒤집은 것이다.

▶2012년 9월15일자 A20면 참조

김씨는 부산국세청에서 일하던 2009년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공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당했을 때 나오는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고 공무원연금공단에 신청했다. 이에 공단은 “개인의 기질적 요인이 자살의 원인이 됐다”며 보상금 지급을 거절했고 유족은 불복해 소송을 냈다.

원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함상훈)는 강동성심병원에 자살 원인 규명을 의뢰했다. 강동성심병원은 “우울증은 개인의 기질적 취약성이 근본 원인인데 이는 자료가 부족해 확인할 수 없다”는 취지의 감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인과관계를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원심의 감정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자살 사례를 1000건 이상 연구한 민성호 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심리적 부검을 의뢰했다. 민 교수는 각종 자료 외에도 김씨의 아내, 자녀 두 명, 어머니, 직장 동료 세 명 등과 총 10시간 이상 면담했다. 감정을 한 민 교수는 “업무 과중, 불합리한 조직 개편, 승진 좌절 등이 원인이었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민 교수를 법정으로 불러 2시간 동안 심문한 뒤 감정 결과를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

■ 심리적 부검

전문 검사관이 자살자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심층면접을 하고 고인의 일기 유서 등 개인적 기록과 병원 진료기록, 검시관 진술 등을 수집해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 어떤 계층이나 심리적 환경에 처한 사람이 자살 위험이 높은지 등의 통계를 작성해 자살 예방에 활용하기도 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