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오른쪽)와 한센인 김용실 씨가 지난 23일 한센인 정착촌 삼애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양병훈 기자
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오른쪽)와 한센인 김용실 씨가 지난 23일 한센인 정착촌 삼애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양병훈 기자
경북 김천시 김천역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야산에 올라가면 석면슬레이트 지붕으로 뒤덮인 허름한 마을이 나온다. 국내에서 규모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센인 정착촌 ‘삼애농장’이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닭을 키웠던 축사 100여개는 폐축사로 방치돼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같았다. 이곳에 한센인과 그 가족 200여명이 살고 있다.

지난 23일 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등 법조인 7명이 이 마을을 찾았다. 해방 이후 정부에 의해 강제 불임·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인들의 진술서를 쓰기 위해서다. 이들을 포함해 10여명으로 구성된 한센인권변호인단(단장 박영립 변호사)은 불임·낙태 수술을 당한 한센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11년 피해자 207명을 모아 첫 소송을 냈고, 다른 피해자도 동참할 수 있도록 전국 91곳의 한센인 정착촌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있다.

이날 아침 동네 한가운데 있는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30여명의 한센인이 변호인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정착촌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강제 수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진술서 작성이 곧 시작됐다.

변호인단과 마주 앉은 옥치배 씨(85)는 정부가 한센인을 격리 수용하고 군부대처럼 통제했던 소록도에서 1952년 정관수술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한센인 간 중매가 들어왔는데 수술하지 않으면 결혼 허가가 안 나왔기 때문이다. 옥씨는 수술 다음날 아침 시력을 잃었다. 그는 “아내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눈이 멀어 지금까지 같이 살면서도 얼굴을 모른다”고 말했다.

박모씨(70)는 한센인 전용 병원인 국립칠곡병원에서 낙태를 당했다고 말했다. 의사가 5개월 태아의 머리에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했다는 것. 박씨는 “밤새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에 시달렸다”며 “지금도 죄책감이 심하고 국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센인에게 강제 불임·낙태 수술을 한 곳은 일본 대만 한국 등 3개국이다. 일본과 대만은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센인에게 준 것은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의 보상금이 아닌 의료·생활지원금이 전부다. 박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에 ‘한센인 후원의 밤’에 수차례 오는 등 관심이 많았는데 정부 차원에서 보상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천=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