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간첩 근거 없다"…항소심서 배상액 배로 늘려

군사독재 시절 간첩으로 몰려 조사를 받다가 숨진 전 법무부 검찰국장 위청룡(1915∼1961)씨의 유족이 국가로부터 11억여원을 배상받게 됐다.

위씨는 평양 출신으로 한국전쟁 직전 월남했다.

전쟁통에 검사로 임용된 그는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7월 법무부 검찰국장에 임명됐다.

중앙정보부는 같은해 11월 하순 위씨를 체포했다.

수사관들은 영장도 없이 위씨를 연행해 20여 일 동안 가둔 채 조사했다.

가지고 있던 돈 94만3천원은 압수하거나 국고에 귀속시켰다.

중정은 위씨에게 간첩 혐의를 씌웠다.

북한에 두고 온 아버지가 공작원을 통해 전한 편지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의 고위층 인사들에게 사진이나 편지를 보내 포섭하는 전략을 썼다.

그는 중정에서 조사를 받다가 숨졌다.

이후락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은 이듬해 1월 '법무부 검찰국장 위청룡이 북괴 간첩으로서 죄가 드러나자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남한 법조계에 침투,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넘긴 '간첩 검사'가 됐다.

그러나 위씨가 간첩이라는 근거는 없었다.

심지어 위씨에게 편지를 전달한 남파 간첩도 재판에서 간첩 행위가 입증되지 않았고 남한에 잠입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배경에는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중정의 알력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군부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정을 두고 독자적 수사권을 부여했다.

중정부장은 중요사건의 수사를 사전 승인하고 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위씨가 간첩이라고 볼 근거가 없고 그를 간첩으로 단정해 발표한 것은 인격권 침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고문이나 가혹행위로 숨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법원은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민사22부(여상훈 부장판사)는 위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국가가 11억2천3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위씨가 간첩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도 재판을 거치지 않고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발표해 위씨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배상액을 1심 때 5억3천600여만원에서 배 이상 늘렸다.

유족은 국가에 빼앗긴 재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재산상 손해를 확정하기 어려운 사정을 참작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dad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