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의 고통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여성들은 가정 폭력을 당하고도 생계 걱정에 제대로 신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여성 지원단체인 아데코 재단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정 폭력을 당한 스페인 여성의 97%가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유로파 프레스 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가정 폭력 피해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대부분 피해여성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또는 악화한 스페인 경제사정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서 폭력 배우자를 고발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재단에 도움을 요청했던 피해 여성의 65%는 전업주부였다. 피해자의 85%는 경제적 능력이 있었다면 오랜 시간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란차 히메네스 아데코 재단 이사는 “스페인 경제위기가 가정 폭력을 연장하게 하고,피해여성을 더없이 무기력하게 하고 있다”며 “이들을 보호하려면 무엇보다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재단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는 2008년 14만2125건에서 2012년12만8477건으로 4년 사이 약 9.6% 하락했다. 올해도 6월까지 6만982건이 접수돼, 작년 같은 기간보다 4.1% 줄었다.재단은 이 같은 결과가 스페인 가정에서 폭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위기로 피해여성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스페인에서 지난 10년간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은 총 700명이며 연간 70명의 여성이 배우자, 전 남편 또는 동거남에게 살해되고 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