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증권사 손잡은 포스코건설, 은행에 '한방'
마켓인사이트 11월21일 오후 2시36분

송도국제업무지구 개발이 한창이던 2007년 11월. 포스코건설은 사업 추진을 위해 약 2조원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했다. 2002년 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게일과 합작한 이후 포스코는 자금 조달을 전적으로 은행에 의존해 왔다. 2007년에도 대안은 없었다. 당시 신한·하나·기업은행 등 13개 대주단(채권은행 모임)은 포스코 측에 다른 사업장의 분양까지 책임지라는 등 갑의 입장에서 강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포스코건설은 연 7%대 금리에 토지와 건물을 몽땅 담보로 잡히고 나서야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1월 중순, 만기를 3년 앞둔 시점에 포스코건설은 맘을 바꿨다. 대출금 전액을 올해 안에 중도 상환키로 결정했다. 7개 증권사 ‘연합군’을 통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을 발행, 직접금융시장에서 연 4~5%로 자금을 조달키로 했다. 시장에선 이례적인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21일 금융투자업계와 건설업계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포스코건설과 미국 게일사가 3 대 7의 지분 비율로 2002년 합작해 만든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는 2조2700억원의 대출금 중도 상환을 기존 대주단에 통보했다. 대주단 관계자는 “대주단 모두 포스코건설과 대출 계약을 해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이 만기 연장을 위해 협상용으로 내민 ‘엄포’가 아니라 최종 계약 해지 통보란 얘기다.

높은 금리로 만기 연장을 낙관했던 은행들은 제대로 허를 찔렸다. 은행이 조 단위 부동산금융 프로젝트를 증권사에 뺏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건설은 송도국제업무지구 자산을 6개 패키지로 나눠 각각의 자산을 기초로 ABCP, ABS(자산담보부증권) 등을 발행하기로 했다. 은행 계열 증권사를 제외한 7개 중대형 증권사가 1조8200억원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증권사별 인수 금액은 1000억~2000억원가량이다. 2조2700억원 가운데 나머지 4500억원은 외환은행(3000억원)과 SC은행(1500억원)이 토지 담보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NSIC는 조달 금리를 연 4~5%대로 낮춰 수백억원의 이자 절감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조달 금리가 최대 2%포인트 낮아져 이자 절감액만 연 550억원에 이른다. 포스코건설의 지난 상반기 순이익은 1137억원. 포스코건설 반기 순익의 절반가량 이자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송도국제업무지구 개발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포스코는 은행권에서 자금을 차입하면서 송도국제업무지구를 담보로 잡혀 개발에 상당한 차질을 빚은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개발업체 입장에선 분양이 안 되면 임대를 주거나 개발이 미진한 토지는 따로 매각하는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데 담보권자이자 채권 회수가 최대 목표인 은행들과 번번이 부딪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자금 조달원 변경은 포스코건설이 각본을 짜고 주연을 맡았지만 ‘작품’의 최대 조연은 증권사다. 은행들의 텃밭이던 부동산, 사회간접자본(SOC), 인수합병(M&A) 금융 시장에 증권사들이 잇따라 도전장을 내미는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산 유동화는 증권사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증권사별로 많게는 2000억원 정도를 소화하는 것이어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 이후 자기자본을 확충한 대형 증권사들은 자기 계정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송도는 2003년 국내 최초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포스코와 게일사는 2020년까지 개발을 완료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소를 유치하기도 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