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 다니던 김영민 씨(52)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구조조정 대상이 되자 한 보험사 소속 설계사로 전직했다. 근무 시간이 유연한 데다 열심히 하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설계사 생활 1년이 지난 지금 김씨는 돈을 벌기는커녕 1200만원에 가까운 은행 빚을 졌다. 초반에는 가족 명의로 3~4개의 보험을 들고, 친척 친구 등을 상대로 한 지인 영업으로 영업점에서 요구하는 월 목표치를 거의 맞췄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바닥이 드러났다.

더 이상 지인 영업을 할 곳이 없어진 데다 부탁을 거절 못 해 보험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해약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영업점 관리자는 “보험계약이 1년 이상 유지되지 않으면 받아간 수수료를 뱉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신규로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가 월 300만원을 밑돌면 영업 지원금도 줄 수 없다고 압박했다.

코너에 몰리자 김씨는 해약한 지인들의 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몇 달치 보험료를 대신 내줬다. 자신의 이름으로 주택화재보험 연금보험 등의 계약도 몇 개 더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 빚만 늘어나자 한계를 느낀 김씨는 설계사 일을 그만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설계사 정착률은 39.1%다. 설계사 생활을 시작한 10명 중 6명이 1년 이내에 관두거나 소속 보험사를 옮긴다는 얘기다.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보험왕들의 사연이 신문에 자주 등장한 까닭에 부러움의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대다수 설계사의 생활과는 괴리가 크다. 지난해 설계사들의 월평균 소득은 295만원이다. 경기 불황 탓에 보험가입자가 줄면서 한 해 전 300만원에 비해 5만원이 줄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수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일부 ‘억대 연봉 설계사’들까지 포함해 산출한 것이어서 설계사들의 소득은 그다지 높은 편은 못 된다. 실제로 한국경제신문이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 3사 소속 설계사 7만1464명의 작년 수입을 분석한 결과 46.2%가 월 200만원 미만의 수입을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념품 구입이나 교통비 등 고객 관리에 필요한 사업성 경비를 제외한 실질 수입은 월 144만원에 그쳤다.

최근에는 설계사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 등으로 가입하는 온라인 판매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보험이다. 전체 자동차보험에서 2001년 0.4%에 불과하던 온라인 판매 비중은 2005년 8.7%, 2007년 16.6%로 빠르게 늘어 2009년 20%대로 올라섰다. 2012년 점유율은 27.4%에 달했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부원장은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와 인터넷 등 판매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설계사 의존도가 낮아졌다”며 “설계사들이 가져가는 수수료 체계도 개편되고 있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