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는 헌병에게 장발장이 훔친 은촛대를 “그냥 준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주교의 행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너지’로 설명하고 장발장에게 새 인생을 살게 했다고 말한다. 한국경제DB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는 헌병에게 장발장이 훔친 은촛대를 “그냥 준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주교의 행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너지’로 설명하고 장발장에게 새 인생을 살게 했다고 말한다. 한국경제DB
“난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를 장발장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한 ‘숭고한 존엄’이라 부르고 싶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나에게 은촛대는 ‘사회통합’의 의미로 다가온다. 사회가 통합되기 위해서는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고 개인 또는 집단이 다른 사회적 위치로 쉽게 이동이 가능한 사회 유동성(social mobility)을 키우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책마을] 장발장이 훔친 은촛대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명작의 경제》 저자의 《레 미제라블》 해석이다. 이렇듯 이 책은 세계문학 속 경제 원리와 정치·사회 현상, 문학적 감성을 함께 풀어내며 경제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는 ‘행복찾기’에 나선다. 저자는 1990년 행정고시 합격 이후 20년 이상 경제관료로 재직하다 지금은 미주개발은행 한국대표로 일하고 있는 인물. 전문 작가가 아닌데도 그는 가상의 매체에 ‘명작의 경제’라는 기사를 연재하는 ‘하서인 기자’의 취재기 형식을 빌려 자칫 따분해질 수 있는 경제 관련 주제에 이야기를 입힌다. 단순한 설명에서 벗어나 인터뷰, 대담 등의 형식으로 가독성을 높인 것. 은촛대에 관한 해석 또한 하서인 기자가 인터뷰한 프랑스 대학생 크리스토퍼의 일기 내용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는 헌병에게 장발장이 훔친 은촛대를 “내가 그냥 준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장발장은 새 인생을 살게 되고 마들렌이라는 이름의 사업가로 변신한다. 사업 성공으로 임금을 많이 지급해 지역 주민들은 소득이 증가했고, 기술 혁신도 이뤄져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면서도 이익은 몇 배나 더 늘었다.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라는 말이 실감나는 사례다.

저자는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을 용서한 행위를 두고 팔꿈치를 슬쩍 찌르는 ‘너지’와 같다고 해석한다. 강요와 설교가 아닌 간단하고 편안한 행위로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또 형식적 법치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인 자베르 경감의 신념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법 사이의 균형, 이때 일어날 수 있는 인기영합주의 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책은 다양한 국가의 작품을 골라 현재 그 나라 경제 사정에 맞는 주제를 적절히 풀어낸다. 예컨대 ‘정치 리스크’가 주로 지적되는 이탈리아는 파시즘 시대의 분노를 담은 《시칠리아에서의 대화》를 통해 설명했고 중국은 《생사피로》에 담긴 농촌의 변화와 도시화를 짚는다. 일본의 경우 《황홀한 사람》에 나오는 고령화의 역습을 담았다.

《시칠리아에서의 대화》로 본 이탈리아 편에서는 청년실업과 불평등에 분노하는 청년과 이성을 통해 현실을 설명하는 교수의 대담으로 현지 분위기를 적절히 전한다. 또 정치 리스크를 설명하며 과반을 넘는 의원이 연합해 각자 지역에 유리한 정책을 번갈아 통과시키는 ‘로그롤링’,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 예산 지출과 성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성과주의 예산제도’ 등을 소개한다. 한국 편에서는 심훈의 《상록수》에 담긴 농촌운동을 살피며 국제 개발과 원조의 철학을 소개한다.

경제와 문학의 성공적인 조화가 흥미롭다. 더러 소설에 연계되지 않은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유익하고 알찬 내용들이다. ‘사람’이 본질인 문학작품에 대한 애정을 관료들이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처럼 말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