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왼쪽)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사이먼 래틀(왼쪽)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100년 전인 1913년 5월29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관객들은 이 곡의 폭력성과 원시성에 폭동을 일으켰다.

100년 뒤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봄의 제전’에 한국 청중은 끝없는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를린필 내한 공연이 열렸다. 한국경제신문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한경 창간 49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마련한 공연이다. 이날 베를린필은 슈만의 교향곡 1번과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했다. 슈만의 교향곡 1번에는 ‘봄’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앞서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래틀은 “두 곡 모두 ‘봄’이란 테마를 사용했지만 정반대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슈만 교향곡이 봄의 기쁨을 담고 있는 데 비해 ‘봄의 제전’은 세계대전 등의 역사적 배경이 녹아들어 암울한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래틀은 두 곡을 지휘할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슈만의 곡은 그 자신이 설명했듯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깨우는 봄의 첫 울림으로 시작해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야상곡을 지나 봄에 대한 작별로 끝나는 악상”을 떠올리게 했다. 래틀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과 가벼운 몸놀림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나갔다.

반면 봄의 신을 찬미하기 위해 제물로 선택된 처녀가 광란 상태에서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그린 ‘봄의 제전’에선 정반대의 표정으로 이 복잡한 곡을 지휘해 나갔다. 베를린필 단원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그의 손끝을 따라 나갔다.

베를린필의 악장인 다이신 가지모토가 협연자로 나선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도 러시아 특유의 낭만적인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베를린필은 12일 불레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노타시옹’과 브루크너 교향곡 7번으로 다시 한번 한국 청중과 만난다. 기자회견에서 래틀은 이 곡들을 음식에 비유했다.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시적이고 친숙하며 오스트리아의 서정성을 느끼게 하는 대작입니다. ‘노타시옹’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양념 역할입니다. ‘김치’와도 같아요. 맵고 즉각적이고 똑똑하죠. 다른 비유도 가능합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이 고급스러운 ‘로스트 비프’라면 ‘노타시옹’은 ‘수프’입니다. 두 곡이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 완벽한 맛을 추구할 수 있게 됐죠.”

래틀은 베를린필의 목표로 “모든 음악에 동시대성을 부여하는 것”을 꼽았다. “모든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흐의 작품은 마치 어제 작곡된 것처럼, (현대 작곡가인) 진은숙과 불레즈의 곡은 지난 수세기 동안 연주돼 온 것처럼 연주해야 해요.”

래틀은 2018년 베를린필과의 계약이 끝나지만 재계약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올해 초 발표했다. 세계 각국 교향악단이 그의 거취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래틀은 “5년은 매우 긴 시간”이라며 “배우들이 6개월 뒤에 무엇을 찍게 될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