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자람의 多役 연기…객석 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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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 '당통의 죽음'
세상에 그 어떤 배우가 이런 퍼포먼스를 해낼 수 있을까. 술에 찌든 중년 남성부터 거리의 창녀, 거지, 신사, 군인, 간수, 마부, 아낙네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민중을 홀로 표현한다. 질펀하고 외설적인 욕설과 거칠고 섬뜩한 폭력적 언어를 일상에서 살아 숨 쉬고 리듬감 있는 구어체 운율로 되살린다. 때로는 밴드 앞에서 흐느끼는 재즈풍 연주에 맞춰 연인의 이별을 애절하게 노래하고, 때로는 심벌즈를 들고 군중을 선동하는 행진곡을 부른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당통의 죽음’에서 ‘거리의 광대’로 나오는 판소리꾼 이자람(사진)의 연기다.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가보 톰파와 한국 배우들에 의해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년)의 고전이 도회적이고 지적이고 세련된 현대 연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중심에는 이자람이 있다.
톰파는 유럽에서 이자람의 ‘억척가’ 공연을 보고 원작에 없는 ‘거리의 광대’ 역을 구상했다. 뷔히너가 프랑스 혁명의 이면과 다층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극전개의 향방을 암시하는 여론의 향배를 보여주기 위해 삽입한 거리극과 군중신을 판소리꾼의 말과 서사, 몸짓으로 대체한 것이다.
극은 ‘공포 정치’ 말기에 ‘피의 메시아’ 로베스피에르가 혁명 동지였던 당통과 그를 따르는 무리의 처형을 계획하고 단두대로 보내는 과정을 그린다. 공포를 통해 정의와 미덕이 지배하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로베스피에르와 수많은 이의 피를 부르는 혁명에 회의하는 당통의 치열한 논쟁과 보이지 않는 대립이 중심축이다.
톰파는 그만의 현대적인 연출 기법과 이자람의 ‘1인극’ 재능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결합한 무대 언어로 혁명과 도덕, 사회의 부조리함과 인간 본성의 딜레마를 깊이 있게 성찰한다. 투명한 아크릴판과 철골로 세운 세트,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소품들은 현대식 최첨단 빌딩을 연상시킨다. 간간이 아크릴 세트에 비춰지는 배우들의 실시간 영상은 첨단 테크놀러지에 눌리고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이미지화한다.
비좁은 투명 상자에 단두대 처형을 앞둔 당통 일당을 벌거벗은 채로 포개 놓아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의 나약함을 형상화하고, ‘당통의 죽음’ 직후 로베스피에르의 이중적인 면모를 거대한 스크린에 나타나는 엄숙한 표정과 무대에서 비틀거리며 구토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당통 역의 박지일과 로베스피에르 역 윤상화가 인상적인 열연을 펼친다. 두 번에 그친 커튼콜이 아쉽다.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은 배우들을 불러내야 하는 무대다. 다만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대사와 배우의 육성이 섞이는 소리의 불균질함과 일부 조역들의 부정확한 발음 등은 공연에 흠결을 남긴다. 공연은 오는 17일까지, 3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당통의 죽음’에서 ‘거리의 광대’로 나오는 판소리꾼 이자람(사진)의 연기다.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가보 톰파와 한국 배우들에 의해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년)의 고전이 도회적이고 지적이고 세련된 현대 연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중심에는 이자람이 있다.
톰파는 유럽에서 이자람의 ‘억척가’ 공연을 보고 원작에 없는 ‘거리의 광대’ 역을 구상했다. 뷔히너가 프랑스 혁명의 이면과 다층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극전개의 향방을 암시하는 여론의 향배를 보여주기 위해 삽입한 거리극과 군중신을 판소리꾼의 말과 서사, 몸짓으로 대체한 것이다.
극은 ‘공포 정치’ 말기에 ‘피의 메시아’ 로베스피에르가 혁명 동지였던 당통과 그를 따르는 무리의 처형을 계획하고 단두대로 보내는 과정을 그린다. 공포를 통해 정의와 미덕이 지배하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로베스피에르와 수많은 이의 피를 부르는 혁명에 회의하는 당통의 치열한 논쟁과 보이지 않는 대립이 중심축이다.
톰파는 그만의 현대적인 연출 기법과 이자람의 ‘1인극’ 재능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결합한 무대 언어로 혁명과 도덕, 사회의 부조리함과 인간 본성의 딜레마를 깊이 있게 성찰한다. 투명한 아크릴판과 철골로 세운 세트,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소품들은 현대식 최첨단 빌딩을 연상시킨다. 간간이 아크릴 세트에 비춰지는 배우들의 실시간 영상은 첨단 테크놀러지에 눌리고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이미지화한다.
비좁은 투명 상자에 단두대 처형을 앞둔 당통 일당을 벌거벗은 채로 포개 놓아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의 나약함을 형상화하고, ‘당통의 죽음’ 직후 로베스피에르의 이중적인 면모를 거대한 스크린에 나타나는 엄숙한 표정과 무대에서 비틀거리며 구토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당통 역의 박지일과 로베스피에르 역 윤상화가 인상적인 열연을 펼친다. 두 번에 그친 커튼콜이 아쉽다.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은 배우들을 불러내야 하는 무대다. 다만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대사와 배우의 육성이 섞이는 소리의 불균질함과 일부 조역들의 부정확한 발음 등은 공연에 흠결을 남긴다. 공연은 오는 17일까지, 3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