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제품 고집·개발자 중심의 조직문화…'공전의 히트'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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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 온라인 게임업체 블리자드
철저한 장인정신
출시 시기 늦더라도 사용자 만족위해 완벽추구
게임 개발에만 '심혈'
투자자들의 간섭 철저 배제…'개발 제일주의' 끝까지 유지
끊임없는 '혁신' 페달
전 세계인과 게임 '베틀넷' 구축…이용자 중심의 게임환경 조성
철저한 장인정신
출시 시기 늦더라도 사용자 만족위해 완벽추구
게임 개발에만 '심혈'
투자자들의 간섭 철저 배제…'개발 제일주의' 끝까지 유지
끊임없는 '혁신' 페달
전 세계인과 게임 '베틀넷' 구축…이용자 중심의 게임환경 조성
2009년 말로 예정됐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2’ 출시가 이듬해로 연기된다는 소문이 그해 8월부터 돌았다. 공전의 히트를 친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이 늦게 출시될 수 있다는 우려에 게임 개발사인 블리자드 주가는 하루 사이에 14%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개발사는 정확한 출시 시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완벽한 스타크래프트2를 위한 테스트가 진행 중이며 이 작업이 언제 끝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만 언급했다.
한국 기업과 비교해 주가에 크게 민감한 미국 기업의 관행에 비춰봤을 때 투자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 같은 ‘뜸들이기’ 끝에 스타크래프트2는 2010년 7월 말에야 출시됐고 한 달 만에 300만장의 판매액을 올리며 기대에 부합했다. 게임에 대한 블리자드의 집요함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만족할 때까지” 장인정신
1991년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실리콘앤드시냅스’라는 게임회사를 설립했다. 모하임 CEO가 할머니로부터 빌린 1만5000달러가 종잣돈의 전부였다. 1994년 워크래프트를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이후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로 이어지는 히트작 행진을 이어가며 경쟁자들을 멀리 따돌렸다.
성공의 저변에는 새로운 것을 게임에 적용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과, 혁신의 결과가 게임에서 완벽하게 구현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완벽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2의 사례에서 보듯 블리자드는 완벽한 게임을 위해 예정된 출시일도 포기한다. 모하임 CEO는 “출시 일정에 맞춰 게임을 만들었더라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불만족스러운 게임을 내놓는 것보다 늦더라도 완벽한 게임을 내놓는 것이 사용자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최초 모델은 1994년 모습을 드러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워크래프트와 게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개발을 진행했다. 1996년 개선된 모델을 갖고 나왔지만 이번에는 경쟁사들의 게임에 밀린다고 판단, 다시 게임을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을 가졌다.
1996년 게임 출시를 기대하고 있던 투자자들과 게임 유통사들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시장에 나왔고 세계에서 1100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개발자 제일주의로 춤추다
블리자드는 노동 강도가 강한 것으로 유명한 게임업계에서도 살인적인 노동량을 자랑한다. 미국 현지 매체에서 블리자드 개발자들의 일을 묘사할 때는 흔히 ‘피나는 중노동(bloody hard work)’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블리자드 개발자들이 게임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은 개발자 중심의 회사문화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게임을 모르는 양복 입은 사람이 개발자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려서는 안된다”는 방침으로 유명하다.
모하임 CEO는 게임 개발을 위한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1994년 일찌감치 회사 지분을 투자자들에게 넘겼다. 이런 저런 간섭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완성도가 낮더라도 좀 더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개발하라거나, 매년 그래픽만 조금씩 바꿔 판매하는 ‘피파 시리즈’와 같은 게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전해졌다. 하지만 디아블로를 개발한 빌 로퍼 부사장이 독립성 훼손을 우려해 회사를 그만두는 등 고위 경영진의 반발로 ‘개발자 제일주의’는 끝까지 유지됐다.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나를 중심에 놓는 채용기준도 개발자들을 단합하게 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셰인 다비리 개발자는 “사람들이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이유는 첫째가 게임, 둘째가 사람”이라며 “직장 동료의 개념을 넘어 진정한 친구가 돼야만 열정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멈추지 않는 혁신
이 같은 블리자드의 강점이 지칠 줄 모르는 혁신 정신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 블리자드는 게임은 물론 게임을 둘러싼 시스템에서도 혁신을 몰고 왔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 발매와 함께 내놓은 베틀넷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스타크래프트 이용자가 블리자드가 구축한 독자 컴퓨터 네트워크 내에서 게임을 즐기는 베틀넷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용자들이 적당한 상대를 찾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디아블로2, 워크래프트3 등 이후 출시된 게임들도 베틀넷을 이용하게 되면서 블리자드는 이용자들에게 더 편리한 멀티플레이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베틀넷을 통해 축적한 사용자들의 이용 데이터는 2004년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출시하는 기반이 됐다.
전략시뮬레이션에서 사용된 환경과 캐릭터를 기반으로 블리자드가 처음 시도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해 초기에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한국의 리니지 등 MMORPG에서 앞서 나가던 게임을 벤치마킹하면서 자신만의 특징을 가미해 2012년 12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게 됐다.
2013년 들어 블리자드의 명성은 예전같지 않다. 야심작인 ‘디아블로3’와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이 주춤하는 사이 신예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가 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시장 주도력이 흔들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성공을 일궈온 블리자드의 성공 DNA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블리자드가 어떤 전략과 게임을 통해 최근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한국 기업과 비교해 주가에 크게 민감한 미국 기업의 관행에 비춰봤을 때 투자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 같은 ‘뜸들이기’ 끝에 스타크래프트2는 2010년 7월 말에야 출시됐고 한 달 만에 300만장의 판매액을 올리며 기대에 부합했다. 게임에 대한 블리자드의 집요함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만족할 때까지” 장인정신
1991년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실리콘앤드시냅스’라는 게임회사를 설립했다. 모하임 CEO가 할머니로부터 빌린 1만5000달러가 종잣돈의 전부였다. 1994년 워크래프트를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이후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로 이어지는 히트작 행진을 이어가며 경쟁자들을 멀리 따돌렸다.
성공의 저변에는 새로운 것을 게임에 적용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과, 혁신의 결과가 게임에서 완벽하게 구현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완벽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2의 사례에서 보듯 블리자드는 완벽한 게임을 위해 예정된 출시일도 포기한다. 모하임 CEO는 “출시 일정에 맞춰 게임을 만들었더라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불만족스러운 게임을 내놓는 것보다 늦더라도 완벽한 게임을 내놓는 것이 사용자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최초 모델은 1994년 모습을 드러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워크래프트와 게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개발을 진행했다. 1996년 개선된 모델을 갖고 나왔지만 이번에는 경쟁사들의 게임에 밀린다고 판단, 다시 게임을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을 가졌다.
1996년 게임 출시를 기대하고 있던 투자자들과 게임 유통사들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시장에 나왔고 세계에서 1100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개발자 제일주의로 춤추다
블리자드는 노동 강도가 강한 것으로 유명한 게임업계에서도 살인적인 노동량을 자랑한다. 미국 현지 매체에서 블리자드 개발자들의 일을 묘사할 때는 흔히 ‘피나는 중노동(bloody hard work)’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블리자드 개발자들이 게임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은 개발자 중심의 회사문화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게임을 모르는 양복 입은 사람이 개발자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려서는 안된다”는 방침으로 유명하다.
모하임 CEO는 게임 개발을 위한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1994년 일찌감치 회사 지분을 투자자들에게 넘겼다. 이런 저런 간섭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완성도가 낮더라도 좀 더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개발하라거나, 매년 그래픽만 조금씩 바꿔 판매하는 ‘피파 시리즈’와 같은 게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전해졌다. 하지만 디아블로를 개발한 빌 로퍼 부사장이 독립성 훼손을 우려해 회사를 그만두는 등 고위 경영진의 반발로 ‘개발자 제일주의’는 끝까지 유지됐다.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나를 중심에 놓는 채용기준도 개발자들을 단합하게 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셰인 다비리 개발자는 “사람들이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이유는 첫째가 게임, 둘째가 사람”이라며 “직장 동료의 개념을 넘어 진정한 친구가 돼야만 열정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멈추지 않는 혁신
이 같은 블리자드의 강점이 지칠 줄 모르는 혁신 정신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 블리자드는 게임은 물론 게임을 둘러싼 시스템에서도 혁신을 몰고 왔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 발매와 함께 내놓은 베틀넷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스타크래프트 이용자가 블리자드가 구축한 독자 컴퓨터 네트워크 내에서 게임을 즐기는 베틀넷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용자들이 적당한 상대를 찾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디아블로2, 워크래프트3 등 이후 출시된 게임들도 베틀넷을 이용하게 되면서 블리자드는 이용자들에게 더 편리한 멀티플레이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베틀넷을 통해 축적한 사용자들의 이용 데이터는 2004년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출시하는 기반이 됐다.
전략시뮬레이션에서 사용된 환경과 캐릭터를 기반으로 블리자드가 처음 시도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해 초기에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한국의 리니지 등 MMORPG에서 앞서 나가던 게임을 벤치마킹하면서 자신만의 특징을 가미해 2012년 12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게 됐다.
2013년 들어 블리자드의 명성은 예전같지 않다. 야심작인 ‘디아블로3’와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이 주춤하는 사이 신예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가 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시장 주도력이 흔들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성공을 일궈온 블리자드의 성공 DNA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블리자드가 어떤 전략과 게임을 통해 최근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