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로 만드는 과학강국]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한다"…다가서는 '노벨과학상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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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연구원 설립 2주년…어디까지 왔나
연구단별 年 100억 파격 자금…행정·기술 인력도 지원
휘어지는 전자소자·식물 개화 앞당기는 단백질 등 성과
연구단별 年 100억 파격 자금…행정·기술 인력도 지원
휘어지는 전자소자·식물 개화 앞당기는 단백질 등 성과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에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올해도 지난달 7일부터 6개 분야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됐다. 과학 분야에서는 공동 수상을 포함해 8명의 과학자가 노벨상의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올해도 노벨 과학상에 초대받지 못했다.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산업 분야에선 빠른 추격 전략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과학 분야에선 아직 노벨상 후보조차 배출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노벨상 수상 여부가 한 나라의 과학 수준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기초과학 역량은 과학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기초과학 분야 역량을 높기 위해 2011년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했고 대형 실험이 가능한 중이온가속기, 기초과학 성과를 사업화로 연결하는 거점지구 등으로 구성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IBS 설립 2주년을 맞아 ‘기초로 만드는 과학강국’을 주제로 기초과학 분야를 점검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응용기술 발전에도 기초과학은 취약
대한민국 과학입국의 꿈을 위해 연구도시로 건설된 대덕특구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혁신역량과 혁신체제의 고도화를 위해 대전 유성구, 대덕구 일대 약 67.8㎢에 조성된 대덕특구는 그 자체로 한국 과학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대덕특구에 자리 잡은 정부 출연연구소들은 그동안 국비 유학생 파견, 유학생 유치 등의 방법으로 해외에서 과학기술을 습득해오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을 주도했다. 이를 통한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과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성장을 주도한 첨단 산업의 주요 원천기술은 해외에서 로열티를 주고 들여온 게 대부분이었다. 원천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첨단 산업에 대한 주도권 측면에서도 중국 등 해외 후발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제2차 한국보고서를 통해 한국에 새로운 성장 공식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도 ‘멈춰버린 한강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저성장을 우려하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원천기술은 기초과학 연구라는 기반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성과물이다. 부족한 기초과학 역량이 국가 성장 한계라는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외로 나가는 인재 잡아야
독일은 자유로운 기초과학 연구가 가능한 막스 플랑크를 비롯해 원천기술을 연구하는 헬름홀츠,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는 프라운호퍼 등 세 개의 연구회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 성과가 바로 원천기술화, 사업화로 연계되도록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구조다.
하지만 한국은 원천기술의 경우 정부 출연연에서, 연구 성과의 사업화는 기업에서 맡는 등 이원화된 구조다. 기초과학 분야만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조차 전무했고 이마저도 장기적인 투자 보단 결과를 중시해 조급하게 성과를 채근하기 바빴다. 기초과학 연구에 뜻을 품은 과학도들이 많았지만 이런 환경과 분위기에 좌절하며 연구를 포기하거나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실제로 이공계 박사의 해외 취업 의향은 34.3%였으며 이 중 국내로 복귀하고자 하는 비중은 25.1%에 불과해 두뇌 유출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로운 환경, IBS의 도전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리에 와르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지난달 고려대에서 열린 미래과학콘서트에서 연구자에게 필요한 자질로 과감하게 새로운 연구를 시도하는 배짱을 꼽았다. 와르셸 교수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을 모두 고려한 계산법을 이용해 화학물질의 분자구조를 예측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주변의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며 어려움도 겪었지만 끈기 있는 연구를 통해 노벨화학상 수상까지 달성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자유로운 연구와 과감한 도전정신이 독보적인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이루어 낸 초석이 된 것이다.
국내서도 이같이 자유롭고 과감한 도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연구기관으로 2011년 설립한 IBS가 바로 이 같은 시도다. 기초과학 선진국에 비해 시작은 조금 늦었지만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과학계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수월성 개방성 자율성 창의성이라는 4대 운영철학을 바탕으로 연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IBS의 장점이다. 연구단별로 연간 100억원까지 파격적인 자금도 지원한다. IBS는 연구자들이 연구 이외의 부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행정·기술 인력까지 지원한다. 11월은 IBS가 설립된 지 2주년이 되는 달이다. 아직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우수한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벌써 크고 작은 연구 성과를 내놓고 있다.
◆속속 열매 맺는 연구성과 나노 분야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응용이 가능해 주목받고 있는 연구 분야다. 특히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접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늘어나거나 휘어질 수 있는 전자소자 개발이 필수적이다. 전자소자 내에 있는 절연막층은 깨지기 쉬운 구조여서 소자 제작이 쉽지 않았다. 이영희 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은 지난 3월 주름진 산화막을 활용해 절연막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최대 20%까지 늘리거나 휘어지면서 투명한 전자소자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성과가 휘고 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 입는 컴퓨터, 피부에 붙이는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9년 사이언스지를 통해 식물 생체 시계 활성을 조절해 개화를 촉진하는 단백질 성분에 대해 발표했던 남홍길 IBS 연구단장도 지난 4월 식물 내 단백질 집합과 해산이 개화 시기 조절에 영향을 준다는 새로운 사실을 증명했다. 이번 연구는 식물의 개화 시기를 조절해 수확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 단장은 “지구촌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는 연구”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산업 분야에선 빠른 추격 전략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과학 분야에선 아직 노벨상 후보조차 배출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노벨상 수상 여부가 한 나라의 과학 수준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기초과학 역량은 과학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기초과학 분야 역량을 높기 위해 2011년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했고 대형 실험이 가능한 중이온가속기, 기초과학 성과를 사업화로 연결하는 거점지구 등으로 구성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IBS 설립 2주년을 맞아 ‘기초로 만드는 과학강국’을 주제로 기초과학 분야를 점검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응용기술 발전에도 기초과학은 취약
대한민국 과학입국의 꿈을 위해 연구도시로 건설된 대덕특구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혁신역량과 혁신체제의 고도화를 위해 대전 유성구, 대덕구 일대 약 67.8㎢에 조성된 대덕특구는 그 자체로 한국 과학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대덕특구에 자리 잡은 정부 출연연구소들은 그동안 국비 유학생 파견, 유학생 유치 등의 방법으로 해외에서 과학기술을 습득해오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을 주도했다. 이를 통한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과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성장을 주도한 첨단 산업의 주요 원천기술은 해외에서 로열티를 주고 들여온 게 대부분이었다. 원천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첨단 산업에 대한 주도권 측면에서도 중국 등 해외 후발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제2차 한국보고서를 통해 한국에 새로운 성장 공식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도 ‘멈춰버린 한강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저성장을 우려하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원천기술은 기초과학 연구라는 기반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성과물이다. 부족한 기초과학 역량이 국가 성장 한계라는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외로 나가는 인재 잡아야
독일은 자유로운 기초과학 연구가 가능한 막스 플랑크를 비롯해 원천기술을 연구하는 헬름홀츠,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는 프라운호퍼 등 세 개의 연구회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 성과가 바로 원천기술화, 사업화로 연계되도록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구조다.
하지만 한국은 원천기술의 경우 정부 출연연에서, 연구 성과의 사업화는 기업에서 맡는 등 이원화된 구조다. 기초과학 분야만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조차 전무했고 이마저도 장기적인 투자 보단 결과를 중시해 조급하게 성과를 채근하기 바빴다. 기초과학 연구에 뜻을 품은 과학도들이 많았지만 이런 환경과 분위기에 좌절하며 연구를 포기하거나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실제로 이공계 박사의 해외 취업 의향은 34.3%였으며 이 중 국내로 복귀하고자 하는 비중은 25.1%에 불과해 두뇌 유출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로운 환경, IBS의 도전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리에 와르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지난달 고려대에서 열린 미래과학콘서트에서 연구자에게 필요한 자질로 과감하게 새로운 연구를 시도하는 배짱을 꼽았다. 와르셸 교수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을 모두 고려한 계산법을 이용해 화학물질의 분자구조를 예측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주변의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며 어려움도 겪었지만 끈기 있는 연구를 통해 노벨화학상 수상까지 달성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자유로운 연구와 과감한 도전정신이 독보적인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이루어 낸 초석이 된 것이다.
국내서도 이같이 자유롭고 과감한 도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연구기관으로 2011년 설립한 IBS가 바로 이 같은 시도다. 기초과학 선진국에 비해 시작은 조금 늦었지만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과학계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수월성 개방성 자율성 창의성이라는 4대 운영철학을 바탕으로 연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IBS의 장점이다. 연구단별로 연간 100억원까지 파격적인 자금도 지원한다. IBS는 연구자들이 연구 이외의 부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행정·기술 인력까지 지원한다. 11월은 IBS가 설립된 지 2주년이 되는 달이다. 아직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우수한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벌써 크고 작은 연구 성과를 내놓고 있다.
◆속속 열매 맺는 연구성과 나노 분야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응용이 가능해 주목받고 있는 연구 분야다. 특히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접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늘어나거나 휘어질 수 있는 전자소자 개발이 필수적이다. 전자소자 내에 있는 절연막층은 깨지기 쉬운 구조여서 소자 제작이 쉽지 않았다. 이영희 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은 지난 3월 주름진 산화막을 활용해 절연막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최대 20%까지 늘리거나 휘어지면서 투명한 전자소자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성과가 휘고 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 입는 컴퓨터, 피부에 붙이는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9년 사이언스지를 통해 식물 생체 시계 활성을 조절해 개화를 촉진하는 단백질 성분에 대해 발표했던 남홍길 IBS 연구단장도 지난 4월 식물 내 단백질 집합과 해산이 개화 시기 조절에 영향을 준다는 새로운 사실을 증명했다. 이번 연구는 식물의 개화 시기를 조절해 수확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 단장은 “지구촌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는 연구”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