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C랩 팀원들이 ‘햇빛영화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여운 삼성전자 선임, 소희선 삼성전자 선임, 이현민 삼성전자 책임, 이지현 삼성디스플레이 대리, 권영진 MYSC 매니저.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C랩 팀원들이 ‘햇빛영화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여운 삼성전자 선임, 소희선 삼성전자 선임, 이현민 삼성전자 책임, 이지현 삼성디스플레이 대리, 권영진 MYSC 매니저. /삼성전자 제공
지난 10월17일 밤 11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지하 2층 한쪽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공구로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큰 웃음이 터졌다. 지난 9개월간 밤늦도록 모여 ‘놀던’ 직원들이 완성한 것은 태양광으로 충전해 영화를 보는 프로젝터, 이른바 ‘햇빛 영화관’이다.

[함께 나누는 사회] 삼성, 햇빛영화관·안구마우스 등 '기술 기부'
삼성의 재능기부 사회공헌 프로젝트 ‘C랩’(크리에이티브 랩)의 세 번째 작품이다. 지난해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안구마우스, 시각장애인용 자전거에 이은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사회 공헌, 내부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C랩이 ‘착한 삼성’의 꿈으로 자리잡았다.

○아이디어, 착한 기술을 만나다

이동식 햇빛 영화관 아이디어는 아프리카 말라위에 사는 소년 마틴이 삼성이 주최한 ‘사회적 기업 아이디어 대회’에서 처음 제공했다. 기여운 삼성전자 소프트웨어개발팀 선임은 “아프리카에선 먹고 입는 게 우선일 거란 생각만 했는데 문화적 갈증도 심했다”며 “태양광 프로젝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은 삼성전자와 계열사가 다 갖고 있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삼성전자에서 설계와 디자인, 조립을 담당할 인력을 충원했고 영상을 맡을 삼성디스플레이, 전지를 담당할 삼성SDI 직원도 힘을 보탰다.

올 2월에 처음 모인 10명의 팀원은 두 달간 난상토론만 벌였다. 이지현 삼성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연구소 대리는 “이렇게 해보자 하면 돋보기를 사오고 종이를 오려 박스를 만들며 생각을 발전시켰다”며 “퇴근 뒤 모여 피곤할 텐데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4월부터는 본격 제작에 들어갔다. 관건은 아프리카에서도 구할 수 있는 부품으로 프로젝터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 이현민 삼성전자 소프트웨어개발팀 책임은 “최소 전력을 쓰면서 밝아야 하고 크기를 키우면서도 높은 해상도를 유지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동이 편한 크기와 재질도 고민했다. 소희선 삼성전자 디자인기획그룹 선임은 “단순히 예쁜 것을 넘어 현지에 맞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생각해 소재를 나무로 결정했다”며 “총 제작비는 9만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에티오피아에서 시범적으로 영화관을 운영해봤다. 300명의 주민이 햇빛 영화관을 찾았고 마을 청년 30여 명은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 삼성 외부인으로는 소셜벤처 MYSC의 권영진 매니저가 참여해 사업성을 함께 검토했다. 권 매니저는 “작동법뿐 아니라 제작 방식도 전해 햇빛 영화관 운영으로 현지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C랩은 ‘창의 삼성’의 꿈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은 여러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중학생들의 공부방 프로그램인 드림클래스, 대학생들의 인생 설계를 위한 열정락서와 임직원 멘토링, 그리고 장학재단과 복지재단 운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민은 깊어진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 차별화된 사회공헌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사회로부터 최대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를 제품 개발만큼이나 골똘히 궁리한다.

그 결과 기업들의 사회공헌은 단순한 봉사 이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 고유의 특성과 역량을 십분 발휘해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러한 사회 기여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기부’ ‘재능기부’식 사회공헌은 사회를 도울 뿐 아니라 기업이 가진 특색을 홍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C랩을 통해 개발한 ‘장애인용 안구마우스 아이캔(eyeCan)’이 대표적이다. 몸이 불편한 신체 장애인들이 눈의 움직임만으로 마우스를 조작할 수 있게 한 제품이다. 종전 제품 가격은 1000만원대로 몹시 비쌌지만 삼성전자 연구진 5명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상용화해 가격대를 5만원 수준으로 낮췄다.

C랩 프로젝트는 사회공헌뿐 아니라 삼성 내부에 ‘창조 경영’을 북돋아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창조 경영’을 화두로 던진 것은 이미 7년 전이다. 2006년 이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시장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창조적 경영을 해나가야 한다”며 “이를 뒷받침하려면 시스템과 인력이 창조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혁신과 창의’를 키워드로 C랩을 키우고 있다”며 “애플 따라가는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애플 따라잡는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현석/윤정현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