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뿔난 사우디…70년 동맹 균열 조짐
7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맹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동의 정치·외교적 맹주이자 세계 최대 산유국이며, 아랍권의 대표적 친미국가인 사우디가 미국에 점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텔레그래프 등 서방 언론에 따르면 사우디 국가안보위원회(국가정보원 격)의 수장인 반다르 빈 술탄 왕자(사진)는 지난주 사우디 제다에서 유럽 외교관들을 만나 미국을 성토하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제대로 맞서지도 않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문제에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리아 반군 지원과 관련해 미국 정부와의 협력을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다르 왕자는 1983년부터 2005년까지 22년간 주미 사우디 대사를 지낸 친미파 인사다.

이와 관련해 사우디 정부 관계자는 “사우디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거부한 이유도 실은 미국에 항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전했다. 사우디는 지난 18일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됐지만, 결과 발표 수시간 만에 공식 거절했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우디는 대신 다음달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의 회원국 자격으로 시리아 내전 관련 아랍연맹 회동에 나선다.

사우디는 1945년부터 미국과 긴밀한 공조 체제를 유지해 왔다. 사우디가 미국 측에 석유 개발 특혜를 주고, 미국은 사우디 왕정을 보호해 준다는 상호 합의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사우디와 적대 관계인 이란과 해빙 무드를 조성하고, 사우디가 강력히 주장했던 미국의 시리아 내전 군사개입도 러시아와의 전격 합의로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이 때문에 중동의 각종 외교 현안에서 “미국이 사우디를 무시하고 있다”는 불만이 사우디 측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과 사우디가 일부 쟁점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양국의 협력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