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살아오면서 제일 중요한게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궁즉통’이라고 했던가요.
그래서인지 간절히 기도했던 것은 웬만큼 이루고 살았습니다”

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두가 힘든 ‘시대’를 겪어내야 했던 적이 있었다. 1950~1960년대 우리나라가 그렇다. 학비 걱정 없이 쌀밥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를 다닌 이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람은 박수를 받는다. 가난을 핑계삼지 않아서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의 이력만 봐선 화려하다.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해 20년 넘게 재경직 공무원을 지냈다. 지금은 국내 최대 금융지주의 수장이다. 하지만 임 회장은 아직도 몸과 마음이 힘든 날엔 어릴 적 남의집살이를 하며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꿈에 나타난다고 한다. 멀끔한 이미지와 달리 고된 삶의 흔적이 잠시 보였다. 그래서 그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교감이 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임 회장의 10년 가까이 되는 단골 한식점 ‘용수산’(아크로비스타점)에서 그의 삶을 들어봤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주인의식 갖고 일하다 보면 빛나는 주연된다"
○중학생 때부터 전전한 입주 과외


임 회장은 강원 영월이 고향이다. 용수산을 좋아하는 것도 강원 산나물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다. 그는 1984년 군 제대 후 지인의 초대로 삼청동 용수산 본점에서 먹어 본 음식의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단골인 그를 위해 제일 먼저 나온 음식도 개성 채나물이었다. 청포묵과 무나물, 숙주나물이 어우러진 별미다.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씹다보면 배어나오는 나물의 향과 맛이 담백하면서도 깊다.

임 회장의 부친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감까지 지내면서 이웃의 존경도 적잖이 받는 유복한 집안이었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광산학(지금의 자원공학)을 전공한 아버지가 가족을 이끌고 상경해 광산사업을 벌이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됐다.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임 회장과 손위 누이만 친척집에 남겨졌다. “생활비도 안 보내주는 친척 아이 둘을 키워 주는 일이 누가 반갑겠어요. 그 집에서 잠잘 자리도 없었어요. 밤만 되면 잘 자리를 찾아 기웃거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나마 그 친척집도 운영하던 인쇄소에 불이 나면서 더 이상 맡아줄 수 없게 됐다. 그때부터 임 회장은 책가방과 교복만 싸들고 안면이 있는 이집 저집을 떠돌았다. 교과서를 펼 때도 눈치를 봐야 했던 더부살이 신세여서 더 독하게 공부한 덕에 경기중에 합격했다. 중학교 3학년 땐 입주과외를 들어갔다. 불과 세 살 아래의 초등학교 6학년을 가르치는 새파랗게 어린 과외선생님이 된 것이다.

언젠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소개한 신문기사에 그의 얼굴과 이름이 실렸다. 기사를 본 한 군인이 자신도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학비 일부를 보내 왔다. “눈물겨운 세상과 그 고단함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돌아보면 제일 중요한 건 마음가짐”

어린 시절을 되짚을 땐 흥분할 법도 한데 임 회장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나물에 이어 제육볶음을 곁들인 보쌈김치가 나왔다. 아삭 베어먹는 소리마저 맛있는 보쌈김치를 한입 든 임 회장이 냉수로 입가심을 했다.

경기중에 이어 경기고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결정할 땐 학비도 마련하기 힘든 상황에서 장기간 고시 공부를 해야 하는 법대나 상경대 지원이 부담스러웠다. 마침 국어를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국어교육과를 선택했다. 그 덕에 한 살 연상의 과 친구였던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고시 공부를 할 때도 집사람의 도움이 컸습니다. 과외 아르바이트 대타부터 각종 보약 준비까지 제 뒷바라지를 했죠.”

공부는 밤낮을 바꿔서 했다. 오후 6시에 일어나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날을 새우는 방식이다. ‘삶이 궁핍한 이들이 모여 살다 보면 동네 사람들끼리 싸울 일이 많아서’였다. 그만큼 낮엔 시끄러웠다는 뜻이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1년 반 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나 고시 공부 때를 돌아보니 제일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궁즉통’이라고 했던가요. 가진 게 거의 없었지만 간절히 기도했던 건 웬만큼 이루고 살았습니다.”

○상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좋은 부하

치열하게 살아와서인지 임 회장은 상사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을 부하직원의 덕목으로 꼽았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옛 중국의 임제선사가 ‘어디든 주인의식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참된 곳’이라는 뜻으로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을 직원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취지에서다.

공직에 있을 때 임 회장의 모습도 그랬다. 행시 20회인 그는 재무관료로 자금시장과장, 금융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얼핏 요직을 두루 거친 것처럼 보이지만 순탄한 공직생활은 아니었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 출신이 주류인 곳에서 사범대 출신의 입지가 좁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주요 보직 인사에서 몇 번이나 밀려났다.

하지만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빛을 발했다. 그가 외교부 다자통상국장으로 있었을 때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처 간 교류 차원에서 임 회장이 외교부로 자리를 옮기자 경제관료로선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기회로 만들어냈다. 외교부에서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원만한 갈등 조정능력으로 주목받았다. 결국 2005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외교부에서는 떠나는 그를 아쉬워하며 국가훈장(홍조근정)을 줬다.

비주류 공무원의 생활이 고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임 회장은 “(인사의) 진폭이 컸죠 뭐.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서 그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내비쳤다.

○時雨 금융으로 ‘판’ 바꾸겠다

돌솥비빔밥이 나왔다. 제철 나물과 버섯, 낙지 등이 잘 어우러진 맛에 손들이 바빠졌다.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밥을 비비다 미뤄 둔 질문을 꺼냈다. 국내 최대금융사라고 부르기엔 어느새 너무 초라해진 국민은행과 KB금융지주의 위상을 회복할 방안을 물었다. 2001년 11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당시엔 자산이 우리금융의 2배, 신한금융의 3배에 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작아졌다. 특히 올 상반기 순익은 신한의 절반에 그쳤다.

까다로운 질문에 그는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놨다. “신뢰를 근간으로 건강한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과도한 금리로 고객의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을 키워주는 금융사가 돼야죠.” 지금까지처럼 외형 경쟁에 매달리며 일희일비하지 말고 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은행에 오면 장삿속에 속는 것이 아니라 자산을 불릴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고객이 필요할 때 적절한 자금을 지원해 주고 고객과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취임 직후부터 그가 강조해 온 ‘시우(時雨) 금융’이다.

찹쌀가루를 송편 모양으로 빚어 기름에 튀긴 ‘주악’과 복분자 차가 후식으로 나왔다. 급한 맘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금융가의 핫 이슈인 우리투자증권 인수 전망에 대해서다. KB금융은 농협지주 등과 강력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민감한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임 회장이 뜬금없이 재무관료 시절 경수로 문제로 북한과 벌였던 협상 얘기를 시작했다. “협상 시작 전 악수할 때 북한 대표가 제 손을 확 끌어당기더군요. 당황하지 않고 저는 더 세게 끌어당겼습니다. 통일부 등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사전에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죠.” 협상 얘기를 마친 임 회장이 빙긋이 웃었다. 자신들이 더 많이 준비하고 자신감으로 무장했음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임영록 회장의 단골집 용수산 아크로비스타점
개성식 청포묵무침 일품…나물향이 입안서 헤엄쳐
[한경과 맛있는 만남]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주인의식 갖고 일하다 보면 빛나는 주연된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주인의식 갖고 일하다 보면 빛나는 주연된다"
용수산 아크로비스타점은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역 부근에 있다. 서울 삼청동에 1980년 처음 문을 연 용수산은 정통 개성 한식점으로 유명하다. 아크로비스타점은 2004년 문을 열었다. 코스 요리 중심인 메뉴를 탈피해 돌솥비빔밥, 갈비탕 등 9000원에서 1만4000원에 이르는 단품 메뉴를 파는 등 더 대중화한 게 특징이다.

대표 메뉴인 보쌈김치는 밤·대추·감 등을 넣어 익힌 맛이 시원하다. 개성 채나물과 개성식 청포묵무침, 불고기 등은 담백하면서도 맛깔스럽다. 인테리어도 분위기가 있다. 벽과 창, 천장 등의 장식은 창호지를 써 은은한 느낌을 준다. 집에 온 손님에게 독상을 차려내 예우한 개성상인의 전통에 따라 김치 신선로 등을 개인 분량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점이 신선하다. 단품 메뉴는 1만원대, 코스는 2만2000원부터 종류에 따라 값이 올라간다. (02)591-9674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