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94세 '영원한 현역'
"건강 회복되면 작품활동 재개…이젤 앞에서 남은 生 마칠 것"
17일 서울 연희동 CSP111갤러리에서 막이 오른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장수현·김흥수 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원로작가 김흥수 화백(94·사진)은 시종일관 지난해 타계한 부인 장수현 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쏟아냈다.
김 화백은 1992년 장씨와 덕성여대에 출강할 때 사제 관계로 만나 43년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세간에 화제를 뿌렸다. 결혼 후 장씨는 화가의 꿈을 접고 김 화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에 전념했고 틈틈이 그림을 그려왔다. 그 뒤 서울 평창동 김흥수미술관 설립의 산파 노릇을 했고 2002년부터 지난해 지병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관장직을 맡아왔다. 이번 전시는 장씨 사망 1주기에 맞춰 김 화백의 제안으로 이뤄졌다는 게 미술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화가로서 장수현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자 그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너무 고집이 세서 도무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생전에 자기 작품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을 정도였고 내가 잠들 때면 몰래 숨어서 작업했다”고 술회했다. “언제나 제 그늘을 벗어나려 할 정도로 자존심이 대단했어요. 그림 속에 그런 의지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장씨의 어디가 맘에 들었느냐고 묻자 “만약 다시 결혼한다면 미술하는 사람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때 장씨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처음 봤을 때 아름답고 예술적인 재능도 뛰어나 마음이 자연스럽게 끌렸습니다. 그래서 아내처럼 생각하고 대했죠.” 당시 전처와 헤어지게 돼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는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가만히 앉아서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받은 것 같다”고 미소지었다.
요즘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전시장에 나타난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가끔씩 소품을 제작하는 정도지만 건강이 회복되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요즘 청력이 많이 떨어지고 관절에도 문제가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굴복하지 않고 재기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할 겁니다. 영원한 현역으로 이젤 앞에서 생을 마칠 생각입니다.” 한때 ‘80 청년’으로 불릴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던 김 화백의 패기는 여전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