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시장 '5대 무기력증'…나랏돈이 돌아야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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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책 무력화' 갈수록 심화
통화정책 유효성 확보수단 마련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통화정책 유효성 확보수단 마련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전 세계적으로 ‘정책 무력화’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통화정책의 반감론 또는 무용론이 제기된 지 오래다.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함에 따라 금리 인하와 총수요 간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케인시안의 ‘통화정책 전달 경로(통화 공급→금리 인하→총수요 증가→경기회복)’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추가로 내리고 싶어도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렸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적정 금리를 따지는 테일러 준칙 등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금리 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금리가 적정 수준보다 낮게 나온다.
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이미 적정 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더 떨어뜨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도 추진해 봤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계부채 부실과 같은 경제주체들의 현금 흐름상 문제로 또 다른 부작용에 봉착하고 있다. 더욱이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입지가 갈수록 약해져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통화 정책이 이처럼 무력화됨에 따라 갈수록 재정 정책이 경기부양 수단으로 선호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재정상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이다. 다른 하나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유행처럼 추진하고 있는 세금 감면이다. 하지만 두 가지 방안 모두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 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있어 이 또한 문제다.
특히 한국 시장은 통화당국과 통화 정책, 금융회사, 투자자, 그리고 가격이 제 역할을 못하는 ‘5대 무기력증’이 심하다. 부동산뿐 아니라 증시도 10조원에 달하는 외국인 매수세만 없었다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는 자명하다. 정책 무력화 명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중에서도 통화 정책 기능을 살려야 재정 정책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한국의 통화 정책이 무력화되는 여러 요인 중에서 나랏돈, 즉 법화(法貨·legal tender)가 돌지 못하는 경화(硬化)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꼽는 사람이 많다. 정보기술(IT)의 급진전으로 그 어느 국가보다 증강현실 시대가 빨리 닥침에 따라 전자화폐, 지역공동화폐, 마일리지, 각종 쿠폰과 상품권 등 대안 화폐가 국민들 사이에서 애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랏돈 이외의 대안 화폐가 애용되는 여건에서는 종전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통화 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각국의 중앙은행도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대안 화폐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 하에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크게 네 가지가 문제가 된다.
첫째, 본원통화 대체 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 부분을 대안 화폐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보면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 발행 차익, 즉 시뇨리지의 감소를 의미한다. 화폐 발행 차익 감소는 통화 정책 수행비용의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대안 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대안 화폐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중앙은행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대안 화폐를 발행할 경우 현금 보유 성향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크게 약화된다. 또 대안 화폐가 현금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경우 발행 주체와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심할 경우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논란이 있지만 통화 범위를 총통화(M2)까지 제한한다면 대안 화폐의 발달로 통화 승수와 통화 유통 속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통화 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는 종전만큼 활력을 찾지 못해 금리 인하 폭이나 본원통화 공급량에 비해 실물경기 회복세가 미약하다.
넷째, 대안 화폐의 발달은 여러 측면에서 통화 정책의 전달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그중에서도 모든 금융 거래에 있어서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금리 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 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 정도 차가 있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이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한국은행은 대안 화폐 발달에 따라 우려되는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법화, 즉 나랏돈을 소중히 여기고 애용하는 습관이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 시장이 당면하고 있는 ‘5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면서 고대하는 실물경기 회복이 앞당겨질 수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추가로 내리고 싶어도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렸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적정 금리를 따지는 테일러 준칙 등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금리 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금리가 적정 수준보다 낮게 나온다.
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이미 적정 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더 떨어뜨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도 추진해 봤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계부채 부실과 같은 경제주체들의 현금 흐름상 문제로 또 다른 부작용에 봉착하고 있다. 더욱이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입지가 갈수록 약해져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통화 정책이 이처럼 무력화됨에 따라 갈수록 재정 정책이 경기부양 수단으로 선호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재정상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이다. 다른 하나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유행처럼 추진하고 있는 세금 감면이다. 하지만 두 가지 방안 모두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 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있어 이 또한 문제다.
특히 한국 시장은 통화당국과 통화 정책, 금융회사, 투자자, 그리고 가격이 제 역할을 못하는 ‘5대 무기력증’이 심하다. 부동산뿐 아니라 증시도 10조원에 달하는 외국인 매수세만 없었다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는 자명하다. 정책 무력화 명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중에서도 통화 정책 기능을 살려야 재정 정책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한국의 통화 정책이 무력화되는 여러 요인 중에서 나랏돈, 즉 법화(法貨·legal tender)가 돌지 못하는 경화(硬化)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꼽는 사람이 많다. 정보기술(IT)의 급진전으로 그 어느 국가보다 증강현실 시대가 빨리 닥침에 따라 전자화폐, 지역공동화폐, 마일리지, 각종 쿠폰과 상품권 등 대안 화폐가 국민들 사이에서 애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랏돈 이외의 대안 화폐가 애용되는 여건에서는 종전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통화 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각국의 중앙은행도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대안 화폐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 하에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크게 네 가지가 문제가 된다.
첫째, 본원통화 대체 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 부분을 대안 화폐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보면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 발행 차익, 즉 시뇨리지의 감소를 의미한다. 화폐 발행 차익 감소는 통화 정책 수행비용의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대안 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대안 화폐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중앙은행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대안 화폐를 발행할 경우 현금 보유 성향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크게 약화된다. 또 대안 화폐가 현금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경우 발행 주체와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심할 경우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논란이 있지만 통화 범위를 총통화(M2)까지 제한한다면 대안 화폐의 발달로 통화 승수와 통화 유통 속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통화 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는 종전만큼 활력을 찾지 못해 금리 인하 폭이나 본원통화 공급량에 비해 실물경기 회복세가 미약하다.
넷째, 대안 화폐의 발달은 여러 측면에서 통화 정책의 전달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그중에서도 모든 금융 거래에 있어서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금리 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 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 정도 차가 있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이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한국은행은 대안 화폐 발달에 따라 우려되는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법화, 즉 나랏돈을 소중히 여기고 애용하는 습관이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 시장이 당면하고 있는 ‘5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면서 고대하는 실물경기 회복이 앞당겨질 수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