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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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오늘의 세계 경제를 만든 중요한 사건은 많다. 그중에서도 농경의 시작과 재산권의 등장은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류의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도시의 형성으로 분업이 체계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생존 수준을 넘어서는 식량 생산이 가능하게 돼 수공업이나 관료조직, 문학, 철학, 과학 등을 업으로 하는 집단이 등장해 인류의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었다.

농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에 시작됐다. 오늘날 농업의 이익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나의 볍씨를 심으면 몇천 개의 낟알을 얻을 수 있다. 한 마리의 돼지는 몇 년이 지나면 수십 마리로 불어난다. 그래서 예부터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여겨왔다. 후대의 중농주의자들은 사회적 순생산을 가져오는 것은 농업뿐이라고 주장했다. 공업은 농업생산물을 가공하는 것으로 순생산의 증가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농경의 시작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인류의 출현 시기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대체로 10만 년 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농경이 인류의 식량조달에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음에도 왜 인류 출현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농경이 시작된 것일까. 농경 이전에 인류는 식량을 주로 사냥과 채취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농업기술이 보잘것없어서 농경의 생산성이 그리 뛰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시사회의 인구는 희박했고 주변에 사냥감이나 먹을 만한 열매도 많았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거주에 적절한 일부 지역에 인구가 집중됐다. 이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냥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농업기술도 점차 개선되고 있었다. 이처럼 기후 변화와 기술 발달이 농경이 사냥이나 채취보다 유리해지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농업기술 발전이나 기후 변화 못지않게 농경의 시작에 영향을 준 것은 재산권의 등장이다.

개인 식량에 대한 재산권 인정으로, 농경사회 시작됐다
재산권이란 자원에 대한 배타적 권리, 즉 다른 사람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런 재산권은 사냥이나 열매 채취를 통해 식량을 조달하는 데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사냥한 사냥감을 그 자리에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경을 통한 식량조달은 긴 시간의 생산 과정이 필요하다. 누군가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해야 하며 작물의 성장에 필요한 물이나 거름을 줘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수확물을 걷을 수 있다. 하지만 수확물에 대한 재산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산적이더라도 누구도 이를 행하지 않는다.

실제 탄자니아 지역의 주민은 고기를 말려 보관하는 기술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이를 이용해 고기를 저장하지 않는다. 탄자니아에서는 식량이 부족한 사람이 보관 중인 식량을 요구했을 때 관습적으로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도 고기를 말려 보관하지 않는다. 수렵이나 채취 인구 비중이 높았던 중동지역은 토지 소유를 금지하는 관습 때문에 농경의 시작이 지체됐다. 이에 비해 그런 관습이 존재하지 않았던 중국 북서부에서는 농경이 일찍 시작됐다. 이처럼 농경은 재산권이 존재해야 가능하며, 재산권이 존재해야 농경이 시작될 수 있었다.

농경의 시작과 함께 수확물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재산권이 등장했다.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에서 농업에 주로 이용된 작물은 쌀이다. 그런데 쌀은 경작하는 과정에서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물에 대한 권리가 없다면 토지가 비옥한 강의 하류 지역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가뭄 때 상류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물을 차단해 자신의 논에만 물을 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물을 얻기 쉬운 상류지역에서 농사를 짓고자 할 것이고 그 결과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쌀의 양은 감소하게 된다. 그래서 물에 대한 재산권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농경과 함께 등장한 다양한 재산권은 투자를 보호해 자본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재산권과 함께 등장한 교환은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제고시킴으로써 물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초석이 됐다. 하지만 재산권이 항상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재산권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다. 쌀에 대한 재산권이 있다면 내가 가진 쌀로 나만이 밥을 지어먹을 수 있다. 공동체 입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쌀 소비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쌀이 부족할 때면 쌀에 대한 재산권은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탐욕으로 쉽게 비난받는다. 나아가 누구나 쌀을 쉽게 소비할 수 있도록 재산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하자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외부 침략으로 인한 재산권의 강탈은 줄어들었지만 국가에 의한 재산권 침해는 여전히 위협이 되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면 개인은 생산적 활동을 포기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도망하거나 국가에 저항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갈린다. 이집트 왕조가 비교적 장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이 재산을 수탈당하더라도 토지를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나일강 주변은 사막이라서 농민들이 나일강 주변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이었다면 이집트의 농민들은 다른 나라로 도피했을 것이고, 이집트 왕조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재산권의 보호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줄어들고 국가의 미래도 불안해지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록 국가가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일부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