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년 - 독주하는 국회권력] 日 민주당의 때늦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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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확보 못한 200조원 복지공약…집권만 하면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포퓰리즘으로 몰락
아르헨, 무차별 복지로 경제 흔들
그리스 , 정치권 선심성 정책에 2011년 국가부도 위기 몰려
포퓰리즘 원천차단
스웨덴, 쟁점이슈 입안때 기업 등 이해당사자도 참여시켜
英, 규제 한건당 기존규제 두건 폐기
포퓰리즘으로 몰락
아르헨, 무차별 복지로 경제 흔들
그리스 , 정치권 선심성 정책에 2011년 국가부도 위기 몰려
포퓰리즘 원천차단
스웨덴, 쟁점이슈 입안때 기업 등 이해당사자도 참여시켜
英, 규제 한건당 기존규제 두건 폐기
지난해 5월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는 침통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정권을 잡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정권 운영의 냉엄한 현실을 몰랐다.” 집권 초기 민주당이 내걸었던 각종 복지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자리였지만 이미 버스가 떠난 뒤였다. 민주당 지지율은 노다 총리의 반성문에도 하락세를 지속했다.
민주당은 결국 그해 겨울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을 자유민주당(자민당)에 내줬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참패하면서 사실상 당 해체 위기에 몰렸다.
선심성 복지정책의 두 얼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은 달콤하지만 그 결말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2000년대 초반 한때 세계 10대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를 겪은 건 무차별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편 탓이다. 그리스는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퍼주기식 복지정책을 편 결과 2011년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포퓰리즘에 빠진 여의도 정치권에 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일본 민주당의 몰락은 포퓰리즘의 결말을 잘 보여준다. 2009년 8월 당시 총선에 나선 일본 민주당은 공약으로 ‘복지 종합선물세트’를 제시했다. 중학생까지 모든 자녀에게 1인당 월 2만6000엔씩 수당 지급, 공립고등학교 전면 무상화, 월 7만엔의 최저보장연금 신설 등 각종 복지대책이 공약집을 빼곡히 채웠다.
복지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재원은 16조8000억엔(약 200조원). 2009년 당시 총 예산의 8%, 국내총생산(GDP)의 3.4%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재원 확보 방안은 늘 그렇듯 예산 낭비 척결과 공무원 인건비 절감 등 국민의 부담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내용 일색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집권 1년 차에 3조3000억엔, 2년 차엔 6000억엔의 재원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선거 공약 대부분은 곧바로 휴지 조각이 됐다. 세계 최악 수준의 국가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이 감당하기엔 애초 무리한 약속이었다.
모자란 세수를 채우겠다고 ‘소비세율 인상’을 추진한 것이 치명타였다. 오자와 이치로 등 민주당 중역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며 잇따라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민주당은 앞선 2009년 선거에서는 ‘소비세 인상에 반대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래저래 거짓말쟁이 정권으로 낙인 찍혀버린 것이다.
국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55년 체제’라 불리던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킬 때만 해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지만 노다 총리 말기엔 10% 언저리로 폭락했다.
아베 신조 당시 총재를 전면에 내세운 자민당은 틈새를 모질게 파고들었다. 민주당이 각종 복지공약을 주워담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또 다른 포퓰리즘 공약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윤전기를 쌩쌩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금융완화 정책과 함께 20조엔에 달하는 경기부양책도 내놓았다. 선거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자민당의 압승. 포퓰리즘으로 망가진 라이벌 정당을 포퓰리즘으로 무너뜨린 것이다. 오다케 히데오 교토대 교수는 ‘일본형 포퓰리즘’이라는 저서에서 “포퓰리즘은 적을 향해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극장형 정치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정치를 드라마나 영화처럼 포장해 헛된 환상만 심어준다는 지적이다.
인기영합정책은 없다
인기 영합형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알기에 주요 선진국들은 철저한 ‘방어 수단’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600년부터 국왕의 정책 보조수단으로 ‘국가특별조사보고서(SOU)’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운용 방식은 이렇다. 특정 정책을 입안할 때 총리나 장관, 행정부처가 충분한 지식이 없다고 판단되면 각계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를 참여시켜 SOU를 꾸린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SOU는 1년에 250~370개 정도다.
이해관계가 걸린 기업 의견도 충실히 반영한다. 여란 노리엔 스웨덴기업총연맹 기업정책 부서장은 “스웨덴에선 기업들의 의견도 SOU에 충분히 전달된다”며 “지금도 스웨덴기업총연맹이 참여하는 SOU가 10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SOU 활동기간은 1~2년이다. 한국처럼 며칠 만에 법안을 뚝딱 만드는 일은 없다.
행정부처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입법안을 만들고, 최소 3개월 이상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레미스(remiss)’란 절차를 거친 뒤 의회에 올린다. 이렇게 올라온 안이 의회를 통과하기까지는 또 3년가량 걸린다. 의회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에야 최종 법안이 만들어진다. 1998년 퇴직연금 개혁안, 2005년 기후변화 관련 특별조사, 2008년 대학 개혁 등 스웨덴의 중요 정책들은 모두 SOU 제도를 거쳐 만들어졌다.
영국도 포퓰리즘 규제와 입법을 사전 차단할 장치를 두고 있다. 영국은 행정부처가 규제를 새로 만들 경우 신설 규제에 상응하는 비용을 초래할 기존 규제를 없애야 하는 ‘원-인(one-in), 원-아웃(one-out)’ 제도를 운용 중이다. 일종의 규제비용 총량제다.
예를 들어 1000억원의 기업 비용 부담을 초래할 규제를 만들 경우 1000억원짜리 비용 부담을 지우는 규제 하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이 제도를 더 강화해 ‘원-인, 투-아웃’을 도입했다. 신설 규제 한 건에 기존 규제 두 건을 없애는 제도다. 무분별한 규제와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를 줄이자는 게 이 제도 도입 취지다.
민주당은 결국 그해 겨울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을 자유민주당(자민당)에 내줬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참패하면서 사실상 당 해체 위기에 몰렸다.
선심성 복지정책의 두 얼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은 달콤하지만 그 결말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2000년대 초반 한때 세계 10대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를 겪은 건 무차별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편 탓이다. 그리스는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퍼주기식 복지정책을 편 결과 2011년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포퓰리즘에 빠진 여의도 정치권에 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일본 민주당의 몰락은 포퓰리즘의 결말을 잘 보여준다. 2009년 8월 당시 총선에 나선 일본 민주당은 공약으로 ‘복지 종합선물세트’를 제시했다. 중학생까지 모든 자녀에게 1인당 월 2만6000엔씩 수당 지급, 공립고등학교 전면 무상화, 월 7만엔의 최저보장연금 신설 등 각종 복지대책이 공약집을 빼곡히 채웠다.
복지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재원은 16조8000억엔(약 200조원). 2009년 당시 총 예산의 8%, 국내총생산(GDP)의 3.4%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재원 확보 방안은 늘 그렇듯 예산 낭비 척결과 공무원 인건비 절감 등 국민의 부담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내용 일색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집권 1년 차에 3조3000억엔, 2년 차엔 6000억엔의 재원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선거 공약 대부분은 곧바로 휴지 조각이 됐다. 세계 최악 수준의 국가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이 감당하기엔 애초 무리한 약속이었다.
모자란 세수를 채우겠다고 ‘소비세율 인상’을 추진한 것이 치명타였다. 오자와 이치로 등 민주당 중역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며 잇따라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민주당은 앞선 2009년 선거에서는 ‘소비세 인상에 반대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래저래 거짓말쟁이 정권으로 낙인 찍혀버린 것이다.
국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55년 체제’라 불리던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킬 때만 해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지만 노다 총리 말기엔 10% 언저리로 폭락했다.
아베 신조 당시 총재를 전면에 내세운 자민당은 틈새를 모질게 파고들었다. 민주당이 각종 복지공약을 주워담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또 다른 포퓰리즘 공약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윤전기를 쌩쌩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금융완화 정책과 함께 20조엔에 달하는 경기부양책도 내놓았다. 선거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자민당의 압승. 포퓰리즘으로 망가진 라이벌 정당을 포퓰리즘으로 무너뜨린 것이다. 오다케 히데오 교토대 교수는 ‘일본형 포퓰리즘’이라는 저서에서 “포퓰리즘은 적을 향해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극장형 정치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정치를 드라마나 영화처럼 포장해 헛된 환상만 심어준다는 지적이다.
인기영합정책은 없다
인기 영합형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알기에 주요 선진국들은 철저한 ‘방어 수단’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600년부터 국왕의 정책 보조수단으로 ‘국가특별조사보고서(SOU)’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운용 방식은 이렇다. 특정 정책을 입안할 때 총리나 장관, 행정부처가 충분한 지식이 없다고 판단되면 각계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를 참여시켜 SOU를 꾸린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SOU는 1년에 250~370개 정도다.
이해관계가 걸린 기업 의견도 충실히 반영한다. 여란 노리엔 스웨덴기업총연맹 기업정책 부서장은 “스웨덴에선 기업들의 의견도 SOU에 충분히 전달된다”며 “지금도 스웨덴기업총연맹이 참여하는 SOU가 10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SOU 활동기간은 1~2년이다. 한국처럼 며칠 만에 법안을 뚝딱 만드는 일은 없다.
행정부처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입법안을 만들고, 최소 3개월 이상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레미스(remiss)’란 절차를 거친 뒤 의회에 올린다. 이렇게 올라온 안이 의회를 통과하기까지는 또 3년가량 걸린다. 의회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에야 최종 법안이 만들어진다. 1998년 퇴직연금 개혁안, 2005년 기후변화 관련 특별조사, 2008년 대학 개혁 등 스웨덴의 중요 정책들은 모두 SOU 제도를 거쳐 만들어졌다.
영국도 포퓰리즘 규제와 입법을 사전 차단할 장치를 두고 있다. 영국은 행정부처가 규제를 새로 만들 경우 신설 규제에 상응하는 비용을 초래할 기존 규제를 없애야 하는 ‘원-인(one-in), 원-아웃(one-out)’ 제도를 운용 중이다. 일종의 규제비용 총량제다.
예를 들어 1000억원의 기업 비용 부담을 초래할 규제를 만들 경우 1000억원짜리 비용 부담을 지우는 규제 하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이 제도를 더 강화해 ‘원-인, 투-아웃’을 도입했다. 신설 규제 한 건에 기존 규제 두 건을 없애는 제도다. 무분별한 규제와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를 줄이자는 게 이 제도 도입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