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가 29억원에 출품된 불두상 ‘탈활건칠’.
추정가 29억원에 출품된 불두상 ‘탈활건칠’.
1972년 초여름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중국 원대의 도자기 ‘청화 유리홍 큰항아리’가 1억8000만엔(당시 59억원)에 낙찰됐다. 응찰자들의 치열한 경합 끝에 중국 도자기를 천문학적인 가격에 사들인 사람은 일본 고미술 전문 딜러 사카모토 고로(90). 중국 도자기가 저평가되던 당시 그가 이 작품을 사들이면서 국제 미술시장에서 중국 고미술품의 가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사카모토가 일본을 중심으로 유럽 중국 중동 한국에서 평생 사 모은 고미술품 가운데 63점을 오는 8일 소더비 홍콩 진출 40주년 기념 특별경매에 내놓는다. 추정가 총액은 63억~80억원.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고미술의 흐름을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경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사카모토가 1950~1960년대 구입한 높이 49.5cm의 당나라 때 불두상 ‘탈활건칠(脫活乾漆)’. 흙으로 불상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발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 특유의 건칠불상이다. 2005년 후쿠오카 규슈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이 작품의 최저 예상가는 2000만홍콩달러(약 29억원).

중국 ‘불교미술의 꽃’으로 손꼽히는 석조관음입상도 나온다. 북제시대 무평 7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148cm의 ‘사암석조연화좌관음입상’은 고미술상 야마나카가 소장했던 것을 1950~1960년 사카모토가 구입한 수작이다. 추정가는 1500만~2000만홍콩달러. 명나라 시대 ‘용각무늬함과 뚜껑’(250만~300만홍콩달러), ‘수반’(200만~300만홍콩달러) 등도 새 주인을 찾는다.

사카모토와 20여년 동안 교류해온 전윤수 중국미술연구소장은 “소더비의 이번 경매는 미술품 수집 및 판매가 얼마나 많은 실패와 과감한 도전을 필요로 하는지 사카모토가 그간의 체험과 노하우를 통해 보여주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사카모토는 소학교만 간신히 졸업했지만 24세인 1947년부터 도쿄에서 고미술 화랑 후겐도를 운영하며 세계적 화상으로 성공했다. 1990년대 중반 니혼게이자이에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책 《나의 이력서》(한국어판 제목《미술시장, 치열한 감동의 승부》)에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의 만남을 회고하는 에피소드도 실려 있다. 1987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봉황공작도’ 병풍을 기증하기도 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