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소공인들이 정부 지원에 발맞춰 힘찬 비상에 나서자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회 경성기계 팀장, 유태호 일성정밀 사장, 엄봉남 삼진정공 사장,김복희 장성정밀 사장,김정만 명진문화 사장, 곽의택 소공인진흥협회장, 안병훈 세일양행 사장. 김낙훈 기자
문래동 소공인들이 정부 지원에 발맞춰 힘찬 비상에 나서자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회 경성기계 팀장, 유태호 일성정밀 사장, 엄봉남 삼진정공 사장,김복희 장성정밀 사장,김정만 명진문화 사장, 곽의택 소공인진흥협회장, 안병훈 세일양행 사장. 김낙훈 기자
서울 문래동 임차공장에서 25년 동안 소방기기 관련 제품을 만들어온 엄봉남 삼진정공 사장(57)은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1억원의 운전자금을 낮은 금리로 빌렸다. 청계천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후 30여년 동안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 조건인데다 대출 금리도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은행대출(보증료 포함 연 6% 안팎)에 비해 훨씬 낮은 연 3.77% 수준이었다. 게다가 무담보 신용대출이다. 인근 50여평의 허름한 임차공장에서 머시닝센터와 보링기 등으로 기계부품을 가공해온 유태호 일성정밀 사장(59)도 마찬가지다.

◆문래동에도 정책자금이….

2012년 12월18일 한국경제신문 A1면.
2012년 12월18일 한국경제신문 A1면.
선반 밀링 프레스 등을 통해 쇠를 깎고 다듬는 영세 기계·금속업체 밀집지인 서울 문래동에도 정부기관들의 지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재개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래동 영세업체들의 애환을 다룬 기사(작년 12월18일 A1,3면 ‘수십년 쇠 깎은 장인이 운다’)를 내보낸 이후다.

문래동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작은 업체들이 모여든 지 30여년 만에 처음이라는 게 이곳 기업인들의 얘기다. 공장규모 100㎡(약 30평)~165㎡(약 50평) 규모의 작은 기업들이 문래동에 1350여개나 몰려있다. 대부분 종업원이 2~3명이다. 일하는 사람이 많은 기업도 7~8명 수준이다.

올 들어 이달 25일까지 중진공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업체는 21개사, 16억5700만원이다. 작년 한 해 동안 5개 업체 4억1000만원에 비교하면 금액면에서 벌써 4배를 넘었다.

뿐만 아니다. 정부 당국자들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 기업인들에게서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지난 상반기 김문겸 중소기업옴부즈맨과 강시우 중기청 소상공인정책국장(현재 경기지방중기청장)이 이곳을 찾아 기업인들의 어려움을 들었다. 지난 8월 말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정책국장으로 새로 취임한 김형영 국장도 추석 직전 이곳을 찾아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귀담아 들었다. 중소기업청 산하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도 문을 열었다.

이달 중순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서울지역본부가 소공인특화지원자금 현장 설명회도 열었다. 문래동 소공인들이 정책자금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한국소공인진흥협회(회장 곽의택)와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 측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 명진문화 경성기계 세일양행 등이 신용으로 자금을 지원받았다.

◆허름하지만 자부심 넘치는 곳

문래동의 밀집된 금속 및 기계부품 가공업체들은 주로 1980년대 초 청계천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이전해온 업체들이다. 하지만 건물은 그전에 지어진 것들이 많아 낡고 금이 간 곳이 허다하다. 일부 건물들은 일제시대 때 가옥으로 쓰던 것을 공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곳의 중소업체 사장들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숙련공들이다. 유대수 유수기공 사장은 말이 사장이지 추석연휴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선반으로 금속을 깎았다. 김복희 장성정밀 사장은 남편이 작고한 뒤 공장을 이어받아 7년째 타워크레인 부품을 만들고 있다.

◆“기업 집적지로 만들어야”

문래동 소공인의 고민은 많다. 우선 이 지역이 재개발될 경우 옮겨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이곳에 있는 기업의 80% 이상이 공장을 빌려 쓰는 임차공장들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건평 100~165㎡의 작은 공장은 수도권에선 찾아보기 힘들다”고 걱정했다.

재개발이 완공돼 아파트형공장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선반 등 중후장대 장비는 아파트형공장에 입주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김문겸 중소기업옴부즈맨은 “이 문제는 개별기업의 힘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며 “금속가공기술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수도권에 이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집적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문래동 1가에서 신도림역 쪽(인천 방면)으로 좌회전이 안되는 교통구조다. 그러다 보니 화물을 싣고 가뜩이나 교통이 혼잡한 영등포역이나 여의도까지 가서 유턴을 하거나 상당수는 불법 좌회전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의 한 기업인은 “대표적인 ‘손톱 밑 가시’인 교통체계를 당장 해결해 줄 것”을 관계당국에 요청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