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씨(59)는 2011년 자신이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탓에 손발을 움직이기 힘들어 김씨는 삶의 활력을 잃어갔다. 회사 경영에서도 사실상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작년 3월부터 “다시 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이 생겼다. 삼성이 김씨처럼 손을 쓰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안구마우스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안구마우스 덕택에 가족에게 마음을 전하고 직원에게 업무 지시도 하고 있다”며 “안구마우스가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행복한 사회…기업이 앞서 뛴다] 퍼주기식 사회공헌은 옛말…이젠 '물고기 잡는 법' 전수
○지속 가능한 업종 연계형으로 발전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임직원들이 일회성 봉사활동을 하거나 연말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는 식이었다면 최근엔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바뀌고 있다. 또 사회복지시설에 단순히 퍼주는 것에서 벗어나 기업의 본업과 관련된 활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안구마우스를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라는 특성을 살려 안구마우스인 ‘아이캔’을 선보였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눈동자를 움직여 PC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한 기기다. 기존에 나와 있는 안구마우스 가격은 1000만원대였지만 삼성전자는 5만원 수준으로 아이캔을 보급했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8월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회적기업 ‘이지무브’를 설립했다. 현대차가 100% 출자했지만 지분 70% 이상을 10개 사회공익재단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이동통신업의 특성을 살려 장애인들의 소통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업들은 또 지속적으로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기 위해 특색 있는 사회 공헌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LG는 ‘젊은 꿈을 키우는 사랑 LG’라는 사회공헌 슬로건 아래 청소년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LG는 창업 초기부터 구인회 LG 창업 회장의 ‘사회를 위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다.

SK는 일시적이고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영속적인 접근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SK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은 ‘사회적기업’과 ‘인재 양성을 통한 인재보국’이다. 롯데는 1980년대 초부터 롯데복지재단과 롯데장학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과 소외계층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 금액 급증

기업들은 사회공헌 지출도 늘리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2000년대 초반에 연간 사회공헌 관련 지출이 1조원을 넘은 데 이어 2011년에는 3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해 공적연금을 제외한 보건복지부 사회복지 예산(15조3887억원)의 20%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해마다 사회공헌 활동에 3조원 이상 쓰고 있다는 것은 기업이 경제 발전과 국민복지 증진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지출 규모는 해외 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 2011년 한국 기업의 매출액 대비 사회공헌 금액 비중은 0.26으로 일본 기업(0.24)보다 높다. 세전이익 대비 사회공헌 지출 비율(3.20) 면에서는 일본 기업(2.73)과 격차가 더 크다. 2011년은 일본 기업들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예년보다 기부를 늘렸던 때다.

국내 기업들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사회공헌 지출을 줄이지 않을 방침이다. 전경련이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에서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8명은 불황이 계속돼도 사회공헌 금액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50.7%)하거나 확대(35.1%)하겠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임직원 자원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기업들의 평균 봉사활동 건수는 2004년 572건에서 2011년 2003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1인당 연평균 봉사활동 시간도 3시간에서 17시간으로 6배가량 늘었다. 이용우 전경련 사회본부장은 “기업들의 사회공헌 노력을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더 많은 기업이 열정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