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과 안숙선 명창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나 국악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과 안숙선 명창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나 국악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중국은 경극, 일본은 노 가부키를 비즈니스 영역으로 끌어들여 하루에 수천명의 관객을 모으고 있다. 반면 한국의 국악에 대해선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국내 관객마저 전통음악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 기조인 문화융성을 위해 국악계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과 안숙선 명창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나 국악의 가능성과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윤 회장은 지난 10년간 ‘창신제’ ‘대보름 명인전’ 등 자체 국악공연을 열고 국악관현악단인 ‘락음국악단’과 사물놀이단인 ‘동락연희단’을 창단·운영해 국악 발전에 힘쓰고 있다. 안 명창은 명실공히 국악계 프리마돈나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명창이다.

[경제와 문화의 특별한 만남] "국악 알면서 경영도 '득음'…판소리는 단순한 음악 아닌 역사"
▷사회=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윤영달 회장=크라운·해태제과에서 2004년부터 열어 온 국악공연인 ‘창신제(創新祭)’에 안 선생님을 모시면서 처음 뵙게 됐습니다. 그 후 1년에 두 번 정도 우리 회사가 기획한 국악 공연에 참여하셨고 해외공연도 같이 다녔죠. 크라운·해태제과가 후원하는 예술단체인 락음국악단 동락연희단의 자문위원이기도 하고요.

안숙선 명창=윤 회장님은 전통음악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대보름 명인전’ ‘창신제’ 같은 국악공연을 만들어서 국악인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십니다. 항상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국악 무대에 대해 말씀해주시는데 느끼는 바가 크죠. 작년 11월엔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 100명이 판소리 ‘사철가(四節歌)’ 떼창을 불러 국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죠.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사회=언제부터 국악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윤 회장=10년 전 우연히 대금 소리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금은 소리내기가 어려워 단소를 조금씩 배우다 국악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국악을 혼자만 즐기긴 아까워서 고객을 위한 국악공연을 기획하게 됐죠. 제과업이다 보니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 등 유통사 고객이 매우 많습니다. 소매가게만 13만개 정도 되니까요. 고객을 초청해 공연을 보여드리기로 한 것이죠. 판소리 떼창을 완창하는 게 목표입니다. ‘수궁가’를 완창하려면 150분이 필요한데 5분씩 쪼개면 30개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나씩 하다 보면 2년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안 명창=열아홉 살 때 남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김소희 선생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고분을 발굴하면 그 흔적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추측하듯 우리는 판소리를 통해서 그 시대의 삶과 가치관을 생생하게 알 수 있어요. 판소리가 특별한 이유는 작사·작곡가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판소리를 통해 희망을 담기도 하고 때론 정부를 향해 날 선 비판도 했어요. 지금의 언론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죠. 가객의 입으로 사랑하고 화를 풀고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판소리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역사인 이유입니다.

▷사회=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고 있습니다.

윤 회장=국악을 처음부터 좋아하는 관객은 드뭅니다. 들을 기회가 별로 없어서 생소하기 때문이죠. 회사에서 처음 ‘창신제’를 연다고 했을 때에도 시시할 것이란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국악 공연을 보신 분들은 이제 다음 공연에 초청하지 않으면 야단납니다. 이번 공연에는 몇 명이 갔으면 좋겠다고 고객사에서 오히려 부탁까지 할 정도입니다.

안 명창=판소리를 비롯한 전통음악은 오랜 시일 들어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장르입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사회=국악계 내부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안 명창=저부터 반성을 해보면 그동안 국악을 보존하고 지키는 데만 신경을 써 온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중의 입맛에 맞는 참신한 기획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판소리 ‘춘향가’의 눈대목인 ‘사랑가’를 여럿이서 부르거나 다양한 관현악기를 곁들여 대중이 듣기 쉽게 하는 것이죠. 또 판소리의 창자(唱者)가 한 명이 아니라 1000명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강강술래를 1000명이 돌고, 살풀이를 100명 이상이 나가서 춘다고 하면 굉장하겠죠.

▷사회=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은.

윤 회장=국악 영재를 발굴하기 위해 해마다 ‘국악 꿈나무 경연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대회를 열어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국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재능 많은 국악 인재들이 정작 사회에 나와선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아요. 그들을 초·중·고 음악 보조교사로 채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청소년들은 수준 높은 우리 음악을 배울 수 있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안 명창=저는 정책의 지속성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정부에서 주도하는 해외 국악 공연은 일회성인 경우가 많아요. 해외 유명 축제에 매년 고정적으로 참가해 공연을 펼친다면 고정팬이 생겨 국악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일본 가부키극장, 경극을 공연하는 중국 국가대극원처럼 국악을 국악답게 보여줄 수 있는 전용극장도 필요합니다. 국악은 호흡과 장단을 느껴야 재미있는 장르입니다. 다목적 극장이 아닌 국악 전용극장을 만들어야 해요.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공연장 말입니다.

▷사회=국정기조가 문화융성입니다. 국악의 융성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 회장=먼저 저변을 확대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서양음악만 편식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공부하게끔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국악은 재미없어서 못 한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국어 영어 수학은 재밌어서 합니까. 교과 과정에서 국악을 이수하게 하고 자주 접하게 해주면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아는 만큼 들리기 때문이죠. 그렇게 조금씩 관객이 확대되고 관객 수준이 높아지면 국악 공연 연출가, 배우, 음악가들의 수준도 높아집니다.

안 명창=외국에 나가 보면 국악을 두고 ‘혼의 소리’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함부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봐야 합니다. 정신적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알아야 해요. 전통을 소홀히 하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빚는 비법을 잊는 과오를 되풀이해선 곤란합니다.

▷사회=국악에 관심이 많은 경제인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윤 회장=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남승우 풀무원홀딩스 총괄사장이 ‘국악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2004년부터 국악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메세나는 경제계와 문화계가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기업이 가격과 스토리만으론 경쟁력을 지닐 수 없는 시대입니다. 고객사를 끌어당길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죠. 크라운·해태제과는 그 서비스로 국악을 택한 것이지요.

안 명창=수많은 기업인의 도움으로 국립국악고가 만들어졌고 많은 인재가 나왔습니다. 장기적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곳에 투자해야 하는데, 윤 회장님 혼자 고군분투하시니 안쓰럽습니다.

▷사회=앞으로 계획은.

윤 회장=경영자들에게 국악을 알리기 위해 국악아카데미를 열었어요. 기업인들은 모든 일을 비즈니스와 연결시키기 때문에 국악을 알면 틀림없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겁니다. 다음달 11~1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2013아리랑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았어요.

안 명창=제 이름을 내건 ‘안숙선 창극단’을 구상 중입니다. 창극은 몇천명의 관객도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큰 장르입니다. 농악 무용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종합예술입니다. 창극을 통해 국악의 범위를 넓히고 환상적인 무대를 꾸미고 싶어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1945년 경기 이천 출생. 서울고와 연세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크라운제과 창업주인 고 윤태현 회장의
장남으로 1971년 크라운제과 이사로 경영에 첫발을 디딘 이래 40여년간 제과업에 종사해 왔다. 문화경영을 선도하는 경영자로도 알려져 있다. 국내 최초로 민간기업이 창단·운영하는 국악단체 ‘락음국악단’ ‘동락연희단’을 두고 있고, 경기 양주시에 예술공간 ‘송추아트밸리’도 운영 중이다. 국악계 발전에 힘쓴 공로로 ‘제20회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받았다.

안숙선 명창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국악인으로 꼽힌다. 1949년 전북 남원의 국악 명가에서 태어났다. 이모 강순영, 외삼촌 강도근에게서 판소리를 익히고 1975년 국창 김소희에게 춘향가·심청가 등을 배웠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했고 1986~1990년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했다.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남원춘향제 전국명창경연대회 대통령상·옥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