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가족마저도 고발과 감시의 대상, 속삭임도 두려웠다…스탈린 시대 '숙청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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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사회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전2권(560·604쪽) / 각권 2만3000원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전2권(560·604쪽) / 각권 2만3000원
“구세프 동지, 당신이 필요합니다” “말해보시오, 동지!” “구세프 동지, 전 당신 딸입니다. 한 끼 사 먹을 수 있게 3루블만 주세요.”
1917년 10월 스몰니학교 비서였던 옐리자베타 드라프키나가 다섯 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12년 만에 만나 나눈 이야기다. 눈물범벅의 상봉은 없었다. 인간 해방을 위한 결전이 벌어지던 혁명 러시아에선 가족 같은 개인사를 ‘속물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드라프키나를 아버지 앞으로 떠민 것은 배고픔이었고, 아버지 역시 3루블 지폐를 주는 것으로 딸과의 상봉을 끝냈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를 ‘동지’라 부르며 돈을 요청하는 드라프키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속삭이는 사회》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해 권력을 쥔 볼셰비키가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러시아 사람들에게 자행했던 만행을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편지, 일기 등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복원한다. 인간의 개인주의적 습성을 말살하려는 볼셰비키에 의해 고발과 감시, 억압과 통제라는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된 사람들이 겪은 야만과 타락, 그 틈에서 피어난 인간 의지와 고결함이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스탈린 시대에 자행된 억압의 진상을 단순히 고발하는 대신 이 같은 기법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정치와 사건의 역사를 넘어선 ‘마음의 역사’를 서술한다.
1권 3장 ‘아파트 공산주의’에서는 공동 아파트를 공산주의 사회 축소판으로 여기며 사람들에게 주거 공간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기본 사고와 행동을 좀 더 공산주의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은 볼셰비키의 어리석은 생각이 어떻게 민중의 프라이버시를 유린했는지를 보여준다.
1권 4장 ‘숙청과 공포’에서는 친구 이웃 심지어 가족까지도 서로 고발과 감시의 대상이 된 현실을 고발한다. 많은 이들이 가면 뒤에 진정한 자아를 숨겼고, 이로 인해 공포가 은폐를 부르고 은폐가 다시 공포를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제목에서 언급하는 ‘속삭임’은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소곤거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 몰래 당국에 고자질하거나 귓속말을 하는 것’이다. 전자는 언론이나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다소나마 자신의 자유의지를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후자는 권력을 손에 쥔 조직이나 국가가 구성원의 흔들리는 충성심을 지키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자행했던 방법이다.
한 세기 전의 증언들이라 생경하게 느껴질 법도 한 책이지만 현대 독자들에게 충분히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여기는 데에는 제목에 함축된 메시지가 지금도 현재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고 작은 조직에서 끼리끼리 수군거리는 뒷말이 횡행하고, 아이디로 자신을 감추며 험담하는 인터넷 댓글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모두 언로가 막혔거나 좁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광장이나 단상이 존재하는 사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소통 불능의 사회에는 미래가 없음을 저자는 사회주의 러시아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최지운 소설가·제1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
1917년 10월 스몰니학교 비서였던 옐리자베타 드라프키나가 다섯 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12년 만에 만나 나눈 이야기다. 눈물범벅의 상봉은 없었다. 인간 해방을 위한 결전이 벌어지던 혁명 러시아에선 가족 같은 개인사를 ‘속물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드라프키나를 아버지 앞으로 떠민 것은 배고픔이었고, 아버지 역시 3루블 지폐를 주는 것으로 딸과의 상봉을 끝냈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를 ‘동지’라 부르며 돈을 요청하는 드라프키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속삭이는 사회》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해 권력을 쥔 볼셰비키가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러시아 사람들에게 자행했던 만행을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편지, 일기 등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복원한다. 인간의 개인주의적 습성을 말살하려는 볼셰비키에 의해 고발과 감시, 억압과 통제라는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된 사람들이 겪은 야만과 타락, 그 틈에서 피어난 인간 의지와 고결함이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스탈린 시대에 자행된 억압의 진상을 단순히 고발하는 대신 이 같은 기법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정치와 사건의 역사를 넘어선 ‘마음의 역사’를 서술한다.
1권 3장 ‘아파트 공산주의’에서는 공동 아파트를 공산주의 사회 축소판으로 여기며 사람들에게 주거 공간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기본 사고와 행동을 좀 더 공산주의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은 볼셰비키의 어리석은 생각이 어떻게 민중의 프라이버시를 유린했는지를 보여준다.
1권 4장 ‘숙청과 공포’에서는 친구 이웃 심지어 가족까지도 서로 고발과 감시의 대상이 된 현실을 고발한다. 많은 이들이 가면 뒤에 진정한 자아를 숨겼고, 이로 인해 공포가 은폐를 부르고 은폐가 다시 공포를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제목에서 언급하는 ‘속삭임’은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소곤거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 몰래 당국에 고자질하거나 귓속말을 하는 것’이다. 전자는 언론이나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다소나마 자신의 자유의지를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후자는 권력을 손에 쥔 조직이나 국가가 구성원의 흔들리는 충성심을 지키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자행했던 방법이다.
한 세기 전의 증언들이라 생경하게 느껴질 법도 한 책이지만 현대 독자들에게 충분히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여기는 데에는 제목에 함축된 메시지가 지금도 현재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고 작은 조직에서 끼리끼리 수군거리는 뒷말이 횡행하고, 아이디로 자신을 감추며 험담하는 인터넷 댓글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모두 언로가 막혔거나 좁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광장이나 단상이 존재하는 사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소통 불능의 사회에는 미래가 없음을 저자는 사회주의 러시아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최지운 소설가·제1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