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불황 속 슈퍼리치 지킴이 … '패밀리 오피스'

## 중견기업 창업주 K회장은 상속과 관련, 고심 끝에 거래 중인 A증권사의 패밀리 오피스 사업 담당 부서에 컨설팅을 의뢰했다. 6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본인이 일군 기업과 부동산을 30대 중반인 아들 K사장에게 원활하게 넘겨주고 싶었기 때문. 반면 2대인 K사장은 수익성이 둔화되고 있는 본업보다 신규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A증권 소속 세무사와 변호사, 회계사 등이 K회장의 기업과 자산에 대해 분석에 들어가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상속세 절세 플랜과 보유건물의 매각 가격 인상을 위한 세입자 조정 등의 계획을 제시했다. K사장은 비용을 절감해 기업을 물려받았다. 계열사 중 1개 법인과 일부 부동산을 매각해 신규 사업 진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 P씨는 200억 원 대 자산가인 부모님의 유언장 작성을 위해 B증권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부에 의뢰했다. B증권 패밀리 오피스 담당부서는 P씨 부모의 보험, 예금 등 혼재돼 있던 금융자산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부동산을 조사했다. 감정평가사 등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가치를 매기고 유언장 대상에 올렸다. P씨 형제들이 상속 시 절세 효과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토지 등 일부 자산은 부동산 컨설턴트가 매각을 도왔다.

하지만 K회장과 P씨는 A·B 증권에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 슈퍼리치, 가업 승계 조언자로 증권사를 찾다

증시 불황기가 길어지면서 증권사들이 패밀리 오피스 사업을 통해 VVIP(초우량고객·Very Very Important Person) 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산관리(WM)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불황 속에서 '슈퍼리치(고액자산가)'를 잡기 위해 가문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관심사를 해결해주는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패밀리 오피스는 증권뿐 아니라 가업승계, 부동산, 은퇴 설계 등 자산 관련 모든 영역을 관리한다.

◆ 증권사, 패밀리 오피스 잇따라 도입 … KDB대우증권 9월 '출격'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증권사는 동양, 미래에셋, 삼성, 신영, 한화(가나다 순) 등이다. KDB대우증권은 다음달 출범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삼성증권이 2010년 SNI지점을 출범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신영증권이 본격적으로 '패밀리 오피스' 명패를 내걸고 가문 관리를 시작했다.

최근 증시 거래대금 감소로 브로커리지 수익 악화 기조가 이어지자 증권사들은 기존 영업점 수를 줄이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섰다. 하지만 '큰손' 고객을 지키고, 추가적인 시장 성장을 염두에 두고 패밀리 오피스 사업에는 투자를 늘리고 있다.

KDB대우증권은 패밀리오피스 사업을 위해 컨설팅지원부에 회계사, 세무사 등을 중심으로 전문인력 10명을 최근 충원, 총 30명으로 늘렸다. KDB대우증권은 지난달 조직개편을 단행해 리테일 조직을 다소 축소한 반면 컨설팅지원부의 소속을 상품마케팅총괄 관할로 변경했다.

이런 서비스를 받기 위한 문턱도 만만치 않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증권사 예치 자산 규모가 수도권 지역은 한 가문당 50억 원, 지방은 30억 원 규모가 돼야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신영증권은 자산 금액 기준이 아니라 '인맥'을 통해 서비스 제공 여부를 결정한다. 예탁자산 규모보다 가문의 총 자산 규모와 서비스를 통한 자금 흐름 추이에 초점을 맞췄다.

김응철 신영증권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총괄 담당 부장은 "경영진의 지인 등을 중심으로 자산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며 "예치 금액과 관계 없이 회사 임원이나 기존 고객의 추천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객 자산가의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신영증권은 지난해 4월 72개 가문과 함께 패밀리 오피스 사업을 출범했다. 현재는 고객이 늘어 두 배가 넘는 150개 가문을 관리하고 있다.

김응철 부장은 "서비스 제공과 관련해 별도 수수료를 받지 않지만 고객 확대와 관련 자산 관리를 통해 사실상 손익분기점(BEP)을 넘겼다" 며 "한해에 한번씩 열흘 가량 미국 뉴욕 출장을 통해 미국 거주 고객과도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퍼리치들은 자산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에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를 통해 가업 승계, 부동산 매매 등 관련 세무 문의가 비교적 잦은 편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강경탁 미래에셋증권 WM비즈니스 팀장은 "사내 세무사, 회계사 등이 합심해 고객 상황에 맞는 해결안을 제시한다" 며 "법인 관련 문의가 들어올 경우 투자은행(IB)팀과 연계해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의 발행을 지원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