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데일 조겐슨 교수 "평생고용과 파트타임 사이…노동 유연성이 창조경제 성공 열쇠"
“한국 정부가 창조경제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데일 조겐슨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는 2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가진 뛰어난 인적자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평생고용이 보장된 직장과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이 둘 사이에 유연성을 갖춘 노동시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겐슨 교수는 창조경제로 노동의 질을 높이고 무형의 자본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한국은 고성장을 거듭하던 시기를 지나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한단계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며 “창조경제는 충분히 축적된 한국의 인적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기업에 “10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되는 등 신흥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탄생할 것”이라며 “신흥국 시장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인적 자산에 대해 높이 평가했는데.

“한국의 성장전략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지금까지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계속해서 수정, 발전되고 있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인재를 기르고 있다. 인도의 인재에 대한 평가가 높지만 사실 인도의 교육제도는 소수의 엘리트만을 육성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한 데는 인적자본 축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격적인 지식경제가 시작된 지금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인적자본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지식을 창조하고 무형의 자본을 창출하는 것은 모두 이들의 몫이다. 효과적으로 창조경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인적자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식과 자본을 생산할 수 있도록 이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인적자본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유연한 노동시장이 필요하다. ‘강남스타일’을 창조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스마트폰 등을 생산하는 높은 기술 수준을 가진 기업에 이르기까지 보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춰야 한다.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일본은 매우 경직된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는 도요타 직원과 세븐일레븐 직원만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일본 노동시장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전자는 평생 고용을 약속받는다. 회사에서 재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리고 급여 수준도 높다. 반면 후자는 몇 주~몇 달까지 단기 고용 계약을 맺는다. 회사는 이들에게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고 잠시 쓰고 쉽게 해고한다. 양쪽 모두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심각하진 않지만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에 대해 기업들은 적극 찬성하고 추진하려 하지만 근로자들은 반대한다.

“유연성을 강조하는 계약으로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인도 출신 엔지니어들이 프리랜서로 일한다. 자동적으로 계약을 하지만 매년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다른 회사와 계약하면 그만이다. 단기 아르바이트와 평생 직장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근로자들에게도 기회다. 일을 하면서 재교육을 받는 등 스스로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일을 찾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제도 역시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 한번 정규교육을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다니다가 혹은 다니는 중간에라도 스스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게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이 시점에 경제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노동, 자본 등 투입 요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질을 높여야 한다. 1947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경제 성장의 근원을 분석한 결과 자본과 노동 등 요소 투입이 경제 성장에 80% 이상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이 기여한 부분은 20%에 불과하다. 기존 경제학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 생산성을 강조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미국, 한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는 전통적으로 생각하던 노동, 자본에 대한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노동은 노동시간으로 측정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동은 시간보다는 지식, 경험, 교육 등을 바탕으로 한 질로 판단돼야 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병원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의사는 환자를 진단하고, 간호사는 어떤 약을 먹을지 알려준다. 안내원은 처방전을 출력해주고 진료비를 받는다. 이처럼 노동의 질이 다르다. 단순히 같은 시간을 일했다고 해서 의사와 안내원의 노동이 동일하게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본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경제학에서 자본은 건물, 자동차, 기계, 공장설비 등 생산을 위해 사용된 자산(asset)을 의미했다. 이제는 그 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을 만들고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창조경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형의 요소를 새롭게 조명하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은데 창조경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경제를 강조하는 또 하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을 경제적으로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 특허,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창조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맞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주로 기업들이 창조경제를 추진하고 지식재산권 등을 획득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여년 전부터 지식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시행돼왔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그에 대한 제도와 인식 등이 부족하다.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이러니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창조경제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이를 시행하는 기관을 마련하는 등 정부의 초기 역할도 중요하다.”

"신흥국, 외환위기 때와는 달라…한국 잘 극복할 것"

[한경 인터뷰] 데일 조겐슨 교수 "평생고용과 파트타임 사이…노동 유연성이 창조경제 성공 열쇠"
▷최근 신흥국 경제 상황을 두고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가 떠오른다는 평가도 있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모든 국가가 단기적인 외화를 갚을 수 있는 만큼의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다. 다시 그런 위기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10년 안에 맞게 될 새로운 국제질서를 준비해야 한다. 중국의 중요성은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다. 중국이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이를 위기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수십년 동안 이어진 급성장 국면이 완화돼 성장 속도가 느려질 뿐이다. 앞으로 수출보다는 내수가 중요해지는 등 변화는 있겠지만 이는 새로운 상황이 아니다. 과거의 경제모델에서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한 시점으로, 모든 국가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현 시점에서 중국이 10년 안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 미국, 인도, 일본, 독일, 러시아, 브라질, 영국 등이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이 되면서 신흥국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질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어떤가.

“최근 글로벌 경제환경에 어려움이 있지만 한국은 이를 잘 극복할 것으로 본다. 외환위기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은 중국보다 먼저 급성장하던 경제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로 이행했다. 한국은 위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도약하는 것에 집중할 때다.”

데일 조겐슨 교수는 100년간 '톱20' 논문 선정…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받아

자본비용 및 투자이론에 관한 전문가인 데일 조겐슨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1963년 발표한 ‘자본이론과 투자행동’이라는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에서 처음으로 자본 투입에서 투자를 따로 떼어내 분석했다. 자본소득 과세와 자본비용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 투자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1971년에는 노벨상과 함께 경제학자 사이에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 2011년에는 그의 연구가 미국경제학회지(The American Economic Review) 100년 동안의 ‘톱20’ 논문으로 선정됐다. 그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칼리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는 미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