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라인의 기적'…日 모바일인구 절반이 사용
“제 친구들은 이제 휴대폰 메이루(문자메시지)는 잘 안 써요.”

21일 오후 일본 지바현에 있는 엠피시어터. 네이버 일본 지사인 라인주식회사(옛 NHN재팬) 주최로 ‘헬로 프렌즈 인 도쿄 2013’ 행사가 열린 이곳에서 만난 여대생 나가이 미키(20)는 “요즘엔 다들 모바일 메신저 ‘라인’만 쓴다”며 “무료인데다 귀여운 스티커(이모티콘)로 기분이나 뉘앙스를 간단히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일본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언론매체와 라인 스티커·게임 등을 만드는 파트너를 대상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일반인도 200여명 참석했다. 도쿄에서 왔다는 직장인 후카사와 아야(27)는 “사실 콘퍼런스 발표 내용보다는 캐릭터 상품 때문에 왔다”며 웃었다. 이날 행사 참석자에게는 인형, 컵 등 몇 가지 캐릭터 상품을 선물로 줬다.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캐릭터숍에선 다트를 던져 캐릭터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가 열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에서 핀 ‘라인의 기적’

일본에서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인기는 편의점만 들어가 봐도 실감할 수 있다. ‘빼빼로’와 비슷한 일본 과자 ‘포키’의 겉포장에는 라인 마크가 찍혀 있다. 과자를 사면 라인 스티커를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광고담당 이사는 “라인 스티커가 일본 사람들에게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물건을 사면 스티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게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 됐다”며 “여러 기업이 이를 활용해 실제로 매출을 크게 올렸다”고 소개했다.

라인의 일본 내 사용자 수는 현재 4800만명. 일본의 휴대폰 사용자(약 1억명) 중 절반이 라인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톡, 왓츠앱 등 다른 경쟁 서비스를 압도하며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은 것이다.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로 이 정도 성공을 거둔 것은 처음이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도 여러 번 도전했지만 뚫지 못한 일본 시장을 네이버가 모바일 메신저로 장악한 것”이라며 “일본에서 라인의 성공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네이버가 간단히 일본 진출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2000년 일본 지사를 세우고 게임과 검색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분기점이 된 것은 2011년 3월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통신이 끊기며 친구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겪고나자 일본인 사이에서는 ‘소중한 사람과의 연결’이 화두로 떠올랐다. 네이버는 이때 한 달반 만에 라인을 만들어 공개하면서 일본인의 ‘필요’를 재빠르게 충족시킬 수 있었다.

◆아시아 넘어 미국·유럽 겨냥

라인은 일본을 넘어 세계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 사용자가 절대 다수였지만 세계 사용자가 2억3000만명에 달하면서 일본 비중은 20%로 줄었다. 태국과 대만에서 각각 1800만명과 1700만명 가입자를 확보하며 역시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스페인(1500만명)과 인도네시아(1400만명)에서도 빠르게 사용자가 늘고 있다. 온라인 신문사 데틱닷컴(detik.com) 기자인 샤샤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며 “왓츠앱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메신저”라고 말했다.

서양 메신저들이 기능에는 충실하지만 디자인이 투박한 반면 라인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면을 내세워 국경과 문화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 일본특파원으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에릭 패너는 “사용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상당히 쉽고 직관적으로 쓸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라인은 이달 1일 미국 현지법인인 ‘라인 유로·아메리카’를 세우고 북미와 남미, 유럽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올해 말까지 세계 3억명 가입자 달성은 무난할 것이라는 게 네이버의 예상이다.

도쿄=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