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은행이 활발하게 외국 금융기관을 사들이는 반면, 한국 은행은 국내 경쟁에 골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과 일본 은행이 저성장, 고령화, 국내 시장 포화라는 비슷한 장기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은행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자 이익이 올해 2분기에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9.7% 감소했다.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4년을 통틀어 최저인 1.88%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사뭇 다르다고 WSJ는 소개했다.
튼튼한 재무제표와 더 많은 투자 자금을 확보한 일본계 은행은 왕성하게 해외 은행을 사들이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미쓰비시 UFJ은행이 지난달 태국의 5위 은행인 아유타야 은행의 지분 대부분을 56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했고, 5월에는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인도네시아의 국립연금저축은행 지분 40%를 15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

또 미즈호 은행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은행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협의 중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아베노믹스 경제정책으로 엔화가치가 급감했지만, 은행들의 해외 수입 비중이 커진 덕분에 일본계 은행의 실탄은 더욱 풍부해졌다.

반면 한국의 4대 은행인 국민·우리·하나·신한은행은 국내 점유율을 높이는 싸움에 골몰하느라 자금 사정이 나빠져 대형 투자에 돈을 쓰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계 은행이 기업의 여유자금을 운용할 목적으로 탄생한 반면, 소액 대출자 비중이 큰 한국계 은행의 경우 기업 대출 분야에서 한정된 숫자의 재벌을 두고 다퉈야 하는 형편이다.

한국계 은행의 해외 인수합병 사례 중 최대 규모는 국민은행이 지난 2008년 카자흐스탄의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지분 49.1%를 7억1천80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일이었다.

이후 인수 규모는 급감했다. 하나은행이 2008년에 3억1천600만 달러를 주고 중국의 지린(吉林)은행 지분 18%를 사들인 게 2위에 해당한다. 하나금융지주가 지난주 미국 뉴욕에 있는 한국계 금융지주사인 BNB 지주를 인수하기로 한 것은 한국의 은행으로서는 최근 드문 해외 인수합병 사례에 속한다.

한국계 은행이 좀처럼 해외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국내 시장 재편 작업이 한창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 정부는 1997∼1998년에 구제금융 차원에서 획득한 우리은행 지분 57%를 매각하려고 하고 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통합 작업이 끝난 뒤에야 한국 은행들의 해외 확장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