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욱 씨의 ‘인 시튜(in situ)’.
홍정욱 씨의 ‘인 시튜(in situ)’.
요즘 작가들은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화가가 조각을 하고 조각가가 설치작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미술 장르의 테두리를 고집스럽게 지키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들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참신한 신진 조각가를 발굴·지원하기 위해 만든 ‘창작지원전’의 올해 참여 작가들은 모두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조각의 본질을 파고드는 사람들이다. 다음달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홍석 이상윤 홍정욱 등 세 명은 지난해 공모에서 20 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선정된 신예이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매체를 가지고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한다.

김홍석은 파도, 구름 등 붙잡을 수 없는 자연현상을 대리석 위에 옮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의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다. 2.4m 길이의 파도 형상을 10㎝ 단위로 잘라놓은 ‘무제’는 어떤 이에게는 바닷가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공룡의 화석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감상자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 속에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끔 했다”는 작가의 말대로다.

이상윤은 잡목이나 허름한 목재 등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를 활용해 목공작업 도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려고 했지만 깎고 맞추고 조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들기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버렸단다. 그렇게 해서 기능적인 도구는 어엿한 예술작품이 됐지만 정작 작가는 “이 도구들을 앞으로 사용할지는 모르겠다”며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실용성보다는 만드는 즐거움이 먼저라는 얘기다.

홍정욱은 이미지의 가장 원초적 형태인 삼각형 사각형 원 등 도형에 관심을 갖는다. 그가 내놓은 ‘인 시튜(in situ)’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조합해서 만든 구형(球形)의 조형물 안에 한 줄기 레이저를 투사한다. 관객은 어두운 전시실 안에서 춤추는 레이저의 그림자를 보며 원초적인 공간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02)3217-6484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