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환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해양 플랜트에서 쓰이는 원격조종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 제공
유지환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해양 플랜트에서 쓰이는 원격조종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 제공

#1.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총에 맞은 병사가 발생하자 의무병은 이 병사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배낭에서 수술용 로봇을 꺼낸다. 미국 워싱턴 병원에 있는 총상 전문 의사는 이 로봇을 원격 조종해 총알을 꺼내고 상처를 봉합한다.

#2. 경북 청송군의 한 사과 과수원. 가을 햇볕이 뜨거운 10월 추수철이지만 사과를 따는 사람은 안 보인다. 대신 로봇이 조심스럽게 사과를 따 포장까지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집에서 이 로봇을 원격 조종하고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지환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조만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6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 연구실에서 만난 유 교수는 “로봇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로봇이 스스로의 지능으로 알아서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일”이라며 “대신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원격 로봇 시대가 몇 년 안에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햅틱(haptic) 기술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구자다. 2002년 미국에서 발표한 ‘시간 영역에서의 수동성 제어’란 논문은 햅틱 기술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연이어 발표된 연구 논문들도 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SCI)에서 100회 이상의 인용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햅틱 적용의 걸림돌 해결


햅틱이란 로봇이 느끼는 감촉을 사람도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로봇이 물건을 집었을 때의 무게감, 손가락 촉감, 벽에 부딪혔을 때 느껴지는 감각 등을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이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유 교수는 “로봇을 이용해 사과를 따거나 사람을 수술하는 등 미세한 움직임을 조작하려면 시각뿐만 아니라 이런 촉각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부를 통해 느끼는 마찰과 거칠기 등은 아직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무게감 등 근운동감각은 많은 연구가 이뤄진 상태다. 하지만 햅틱 기술을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햅틱을 적용하면 로봇의 팔이 불안정하게 떨리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 그는 “일반 로봇은 사용자의 지시만 한 방향으로 전달하면 됐지만, 햅틱 로봇은 사용자와 로봇 간에 양방향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시스템의 불안정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석이 됐던 게 유 교수의 2002년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과잉 에너지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없애주는 해결 방안을 고안했다. 불필요한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면 불안정한 움직임에 쓰일 에너지도 없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 착안한 것. 그는 “다른 해결 방안도 많이 나왔지만 이 아이디어가 그중 가장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술로봇·입는 로봇 개발

유 교수는 다양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수술 로봇도 상당한 연구가 진척됐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미국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사, 일본 도쿄공대, 독일 뮌헨공대와 공동으로 2010년 성공시킨 수술로봇 실험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실험은 각각의 대륙에 흩어진 의사들이 로봇을 원격 조종해 공동 모의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유 교수는 “거리가 멀리 떨어진 경우엔 신호가 지연돼 로봇이 장기와 접촉하는 느낌을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게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는 실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로봇이 상용화되면 환자가 직접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의사로부터 수술받을 수 있게 된다.

유 교수는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것과 같은 입는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입는 로봇을 통해 몸이 불편한 사람도 정상인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목적에서다. 또 공사장이나 농사 등 큰 힘이 필요한 작업에서 사람의 힘을 크게 아낄 수도 있게 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